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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희림(柳希霖)


 

류희림(柳希霖)
1520년(중종 15)∼1601년(선조 3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열(景說). 복룡(伏龍)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15)
성균관유생으로서 유생 1,000여명을 대표하여 당시 재흥 추세에 있던 불교를 비판하고,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폐지하도록 상소하였다.
그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이 되었다.
이어서
검열·박사·정언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570년(선조 3) 지평이 되었다.
이후 계속 경직(京職)에만 머물러
사헌부장령·집의를 역임하였는데, 이 시기에 대제학 김귀영(金貴榮)의 천거를 받아 출세를 거듭할 수 있었다.
1581년
형조참판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가지고 간 방물(方物) 중 면주(綿紬)10필과 흑마포(黑麻布) 11필이 부족하여 처벌, 파직되었다.그뒤 재기용되어 한직에 머물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서 왕을 호종하여 좌승지로 발탁되었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 그 다음해에 예조참판이 되었고, 이때 영의정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상소하여 세자 광해군으로 하여금 군국기무(軍國機務)를 관장하도록 청하였다.1597년 동지돈령부사가 되었고, 죽은 뒤인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3등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양(文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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