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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편집인
  제    목  류제억
   

東學革命에 參與한 柳濟億의 行蹟


忠景公派 判尹公宗中 總務 柳 正 坤


조선 말엽 즉 고종(高宗) 32년(1894) 왜구의 국권 침탈에 대항하고 봉건체제의 학정에 분연히 항거한 소위 갑오동학농민혁명군의 일원이셨던 나의 증조(曾祖)의 행적을 들은 대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공의 휘는 제억(濟億)이요 자는 응율(應律)이니 시조 대승공(大丞公)의 35세손이시다.

충경공(忠景公)-판윤공(判尹公)-회양공(淮陽公)의 계통으로 다시 수대를 내려와 휘 여신(汝信)의 10대 종손으로 고종 초엽에 부친 상선(祥善)과 모친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 독신으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서 태어나셨다.

지금으로부터 110여년전 갑오년(1894)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외세의 열강 속에 무능한 임금과 부패한 탐관오리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토탄에 빠지고 백성과 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에 누구하나 외세를 몰아내고 부패를 척결하고 토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목숨을 걸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동학교를 창시하신 최제우(崔濟愚)선생께서 "인내천 사인여천(人乃天 事人如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면서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인간은 만인평등 함을 가르쳤다.

동학교을 따르던 전라도 지역은 전봉준(녹두장군) 접주(지도자)가 맡고 중부지역은 최시형, 손병희(동학교 제3대 교주이며 3.1운동 독립선언문의 33인 서명자 중 수장임)선생들이 주축이 되어 교세를 넓혀나가셨고 충남 서산 태안지역은 서산군 지곡면에 살고계시는 최형순(1890년)선생이 해월 최시형 접주를 만나 동학교에 입도하여 각 지방에 숨어 다니면서 동학 교리를 전도하였다. 나의 증조부께서도 난세에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 일원이 되어 힘을 보태고자 동학교에 입도하시게 되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농민들에게 수탈과 폭정을 일삼는 서산군수 박정기, 태안군수 신백희 등이 서산 태안 해미지역의 동학교 접주 약 30여명을 체포하여 처형 직전에 동학교 선량한 농민들이 분개하여 서산 태안 관아 앞에 집결, 농기구인 삽, 곡갱이, 낫 등을 가지고 분연히 봉기, 관아를 습격하여 군수 이하 폭정관리들을 죽이고 점령하여 관리하면서 해미, 신례원, 예산 등 관아를 습격 점령하였다. 이어 전국으로 동학농민군이 봉기함으로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관군으로 진압하기 어려워지자 일본군을 끌어들여 조총과 총포의 신무기를 갖춘 일본과 홍성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노획한 소량의 총기류와 농기구만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전투를 했지만 역부족으로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동학농민군은 전사하고 붙잡혀 처형당하고 안타깝게도 후퇴하게 되어 해미, 서산, 태안 백화산 전투에서 거듭 참패함으로써 수많은 농민군이 전사하고 잡혀죽고 살아남은 자는 각기 흩어져 피신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관군과 일본군은 동네를 정밀 수색하여 농민군은 물론 숨겨준 협조자를 체포하여 산 계곡 개울가에서 무참히 교살 및 학살을 자행하였다.

무능한 위정자들 때문에 백성들이 토탄에 빠진 세상을 선량한 동학농민군은 큰 뜻을 품고 봉기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되었고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전사하였다.

저희 증조부께서는 탈주하여 서산군 팔봉면 금학리 깊은 산골(당시는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임)에 은거하여 고향인 태안에 연락을 끊고 사시다가 별세하기 전에 두 아들을 불러놓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동학농민군에 참여했는데 실패하여 "동학농민난"이란 오명을 얻어 억울하게 죽기에 이르렀다.

내 대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너희 대에 뜻을 이루라고 설명하시면서 동네 사람들이나 관아에서 동학농민군에 참여한 줄 알면 3족을 멸하게 되니까 발설하지 말 것이며 족보는 물론 어디에든지 근거를 남기지 말라, 구두로만 죽기 전에 맏자식에게만 알려주고 좋은 세상이 온다면 만민에게 밝히고 동학농민군은 순수하게 봉기하였노라고 유언을 하셨다고 제가 어려울적 조부님에게 말씀을 듣고 자랐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로 36년 동안 핍박 속에 살았고 외세에 의하여 해방되어 대한민국이 탄생되었지만 6.25 전쟁을 겪어 경제가 너무나 어렵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 감히 전사한 동학농민군의 업적과 명예회복 그리고 위령제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드디어 1960년 이후 동학농민군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서산 태안지역"동학농민군 유족회"를 결성하여 서기1978년 10월 2일 충남 태안군 백화산에 "갑오동학농민혁명군" 추모탑을 건립하고 매년 위령제를 올리게 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관계기관과 국회에 수차례 건의하여 2004년 2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동학농민난"을 "동학농민혁명군"이라고 결의 통과되어 유족회의 어렵고 어려운 오랜 숙원사업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이제는 명예회복이 되었으니 순국선열들께서도 영원히 편안히 잠드소서.

국가에서는 현재 어떠한 보상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회복된 것이 "동학농민혁명군 유족회" 회원으로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2005년 9월 30일까지 국가기관 즉 각 도에서 "동학농민혁명군" 참여자를 접수 등록 하였다.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4-06 17:59)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4-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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