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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징(柳 徵 )
 

류 징 柳  徵

 

<류 징 : 1681~? : 英祖朝 孝行族閭 大丞公 25世 : 左相公派>

 

자 여원(汝源).

강원도관찰사 경집(江原道觀察使 景緝)의 증손이요, 중연(重衍)의 2자인데 숙종(肅宗) 7년 辛酉 정월 19일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

편모(偏母)를 모심에 지성이 있어 혹 밖에 나가놀다가 과실 하나라도 얻으면 문득 품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어머님에게 드리었다. 모친께서 일찍 가슴알이로 고생하였는데 옆에서 도와 지성으로 간호하니 그 모친께서 칭찬하여 이르기를 『참으로 독실한 효자로다』하였다.

영조(英祖) 4년 戊申(1728) 3월, 모친의 병환이 위독하였는데, 당시 백씨 홍(泓)께서 외직에 계시고 게다가 역변(逆變)이 갑자기 일어나 온 마을이 텅 빈지라 연락이 불가능하였다. 공께서 울부짖으며 하늘에 빌어 이르기를 『모친의 수명이 며칠이라도 연장되어 형님께서 모친의 얼굴을 다시 보게끔 해 주십시오』하고 애통함이 신명(神明)을 강동시켰던지 모친의 병환이 과연 조금 회복되었다. 돌아가심에 당하여 난리가 끝나고 모두 돌아와 초종(初終)의 범절을 평시와 다름없이 치르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효성에 감동한바라 하였다.

만년에 음사로 두 고을의 수령(守令)을 지냈는데 봉록(俸祿)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매양 제사를 당하면 목욕제계하고 종가의 사당(祠堂)에 가서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행사에 힘썼다.

고을 백성중에 그 모친을 박대(薄待)하고 술주정이 심한 자가 있거늘 불러 순순히 타이르고 충고하니 그 사람이 부끄럽게 여기고 마침내 술을 끊고 자신을 깨우쳤다. 그후 세자익위사익찬(世子翊衛司翊贊)을 거쳐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을 끝으로 관로(官路)에서 물러났다.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무릇 오복육의(五服六儀)의 범절을 정밀히 분석, 『儀禮輯錄』을 짓고, 또『忠孝圖』를 그려 병풍(屛鳳)을 만들어 자리 곁에 두고 항상 눈여겨 보며 경계하였다.

고을에서 공의 효성을 천거, 예조(禮曹)에 유장(儒狀)을 올려 정려(旌閻)의 특전이 내렸다.

배위 함양여씨(咸陽呂氏)는 필범(必範)의 따님으로 1남을 두어 현모(賢模)이다.

※ 儒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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