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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환욱(柳換彧 )
 

류 환 욱 柳  換  彧

 

<류환욱 : 1828~1886 : 高宗朝 孝子 大丞公 27世 : 左相公派>

 

자 일능(一能).

서산 자미(西山 自湄)의 11대손이요, 자여도찰방 극창(自如道奈訪 克昌)의 5대손이요, 공모(公模)의 장자로 순조(純祖) 28년 戊子 12월 2일 양산(梁山)에서 태어났다.

집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자신은 온전한 옷이 없이 지내면서도 어버이 섬김에 지성을 다 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하여 3일을 입에 죽을 넣지 않고 3년을 질대(經帶)를 벗지 않음은 물론 주육(酒肉)은 아예 가까이 하지 않았다. 묘소가 집에서 10리 거리로 큰 냇이 있었는데 조석으로 성묘 호곡(省墓 號哭)하고 혹 홍수를 만나 물이 넘치면 초부(樵夫)가 감동하여 도와 건너주었다. 하루는 소나기가 내려 물이 굉장히 범람하여 밤이 이르도록 건너지 못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맹수(猛獸)가 나타나 보호하여 건너 주고 이로부터 날이 저물면 매양 맹수가 호위하니 온 고을에서 칭찬하여 마지 않고 도내의 유림(儒林)들이 천장(鳶狀)을 올리었다.

고종(高宗) 23년 丙戌 5월 19일 졸하니 향년 59세로 본군 상서면 회현산 건좌(本郡 上西面 會賢山 乾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의춘방씨(宜春房氏)는 두원(斗元)의 따님인데 1남 1녀를 두고 졸하니 부군과 합폄하여 상석이있다.

아들은 호균(澔均)이요. 따님은 전주이우돈(全州李祐敦)에게 출가하였다.

아들 호균(澔均)이 부친의 효행이 포양(褒楊)되지 못함을 애통히 여기고 비석을 세우고자 함에 종인 기윤(宗人 淇潤)이 감동하여 거금을 희사하고 일을 주간하여 효행비(孝行碑)를 세원다. 교리(校理) 자운이중구(紫雲 李中久)가 비명을 지었는데 그에 이르기를 『효자의 집에 또 효자가 있도다』하였다.

辛巳(1941)에 공의 효행비를 양산읍 산막리(梁山邑 山幕里) 촌전 국도변에 옮기고 비각을 건립하였는데 이 일은 족증손 순영(族曾孫 油永)이 감동하였으며 비문은 밀양박천수(密暘朴天銖)가 지었다.

※ 孝行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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