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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환수(柳煥秀)
 

류 환 수 柳  煥  秀

 

<류환수 : 1807~1856 : 哲宗朝 學行. 大丞公 27世 : 左相公派>

 

자 성원(聖元). 호 양은(楊隱)

서산 자미(西山 自湄)의 11대손이요. 호은 극화(湖證 克華)의 5대손이요, 택모(宅模)의 3자로 순조(純祖) 7년 丁卯에 울산 양정(蔚山 楊亭)에서 태어났다.

겨우 말을 배을때 문득 글자를 알고, 스승에게 글을 배우되 독촉을 받지 않고 스스로 힘쓰더니, 장성함에 어버이의 가르침을 쫒아 대학팔조(大學八條)의 경의(經義)를 깊이 탐구하였다.

부친께서 환후(患候)로 수월을 침중하심에 자신을 대신해 주도록 하늘에 기도하고 드디어 순조(純視) 30년 庚寅(1870)에 상을 당하여 슬픔을 다하고 죽을 마시며 육류(肉類)는 일체 끊음은 물론 장례를 치른 후 삭망(朔望)에 반드시 성소(省掃)하고, 헌종(憲宗) 12년 丙午(1846)에 모친상을 당하여 역시 전상(前喪)과 같이 거상(居喪)하였으며 매월 초하루 성소를 평생에 폐하지 않았다.

위로 두형을 섬기되 어버이같이 공경을 다하는 한편 중형 환기(仲兄 煥基)로 더불어 해은 강필효(海隱 姜必孝)선생의 문하에 종유, 위학(爲學)의 근본을 체득하고, 집에 돌아와 문자질(門子姪)들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쏟았다.

향중의 사우(士友)로 더불어 학호서원(鶴湖書院)을 창건하여 시례(詩禮)를 강론 하므로써 일방의 유풍(儒風)이 크게 떨치었다. 한편 산수(山水)에 낙(樂)을 부쳐 거처하는 집에 양은(楊燻)이라 현판을 걸고 송치독서(誦詩讀書)로 여년을 즐기니 승지 이희면(承旨 李憘勉)이 양은재기(楊隱齋記)를 지어 공의 행의(行誼)를 찬미하였다.

철종(哲宗) 7년 丙辰 4월 10일에 향년 50세로 돌아가시니 울산군 대현면 양죽동 대일산 계좌(蔚山郡 大峴面 良竹洞 大日山 癸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치규(致奎)의 따님인데 순조(純祖) 乙丑생으로 고종(高宗) 壬午에 돌아가시니 향년 78세였다.

6남 1녀를 두어 아들은 두균(斗均) ․ 태균(台均) ․ 열균(悅均) ․ 철균(喆均) ․ 영균(濚均) ․ 형균(泂均)이요 . 사위는 고창오상맹(高散吳尙孟)이다.

지난 庚寅(1950) 봄에 양위(兩位)의 묘소를 옮겨 양정 심청곡 주거등 임좌(楊亭 漂淸谷 主亮瓔 壬坐)에 합폄 하였는데 묘지명은 족증손 소민 자영(素民 自永)이 짓고, 庚戌(1970) 봄에 묘비를 세웠는데 묘갈명은 응천박용진(凝川朴墉鎭)이 지었으며 한편 수비(堅碑)를 찬양하는 시가 유림(儒林)으로부터 10여수가 답지하였다.

공께서 문장(文章)이 뛰어나 시(詩) ․ 서(書) ․ 의(義) ․ 제문(祭文) ․ 정문(呈文)등이 양은유고(楊隱遣稿) 1권으로 간행되었다.

자손들은 울산시 양정동(蔚山市 楊亭洞)에 세거하고 있다.

※ 蔚山邑誌, 興麗勝覽. 嶠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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