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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환구(柳 煥 球 )
 

류 환 구 柳  煥  球

 

<류환구 : 1828~1893 ; 高宗朝 孝子 大丞公 27世 : 檢漢城公派>

 

자 치옥(湃玉).

양도공 영(良度公 潁)의 13대손이요. 동심(東心)의 2자로 순조(純祖) 28년 戊子 12월 30일 온양(溫陽)에서 태어났는데 천성이 착하여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형 환벽(煥璧)으로 더불어 모친을 봉양하면서 가정을 영위하는 한편 모훈(母訓)을 쫓아 한결같이 행하였다. 문득 모친께서 풍증(風症)으로 삼사년을 지나는동안 꼭 곁에서 부축해드리고 온갖 약을 써왔으나 효험이 없었다. 하루는 의원(醫員)이 말하기를 『산삼(山蔘)을 쓰면 가히 낳으리라』하거늘 공이 형에게 『좋은 약을 듣고도 구하여 쓰지 않으면 어찌 사람의 자식이리요』하고 즉시 행장(行裝)을 차려 평강군(平康郡)에 이르러 몇 달을 구하는데 하루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여 약을 구하다가 얻지 못함은 효성이 부족한 탓이다』하였다. 공이 재배(再拜)하고 울면서 『그렇습니다.』하니 노인이 또 『이 산 뒤 하나의 큰 반송(盤松)아래에 삼지오엽(三枝五葉)의 풀이 있으니 바로 그대 모친의 약이다.』하거늘 문득 깨보니 꿈이었다. 이튿날 그 곳에 가보니 과연 있는지라 캐가지고 돌아와 다려 드린 후 쾌히 낳으셨다. 사람들이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 하고 사림(士林)에서 천장(薦狀)이 있었다.

고종(高宗) 30년 癸巳 5월 10일 55세로 졸하였다.

배위 밀양박씨(密暘朴氏)는 증공판 효진(贈工判 孝鎭)의 따님인데 자녀를 두지 못하고 졸하니 응봉면 덕지리구역 동산리후 백보내 오좌(陰峰面 德地里區城 銅山里後 百步內 午坐)에 부군과 합부하였다.

족제 관익(族弟 煥益)의 차자 덕균(德均)을 맞아 계자하고 그 후손이 지금 아산군 탕정면 동산리(牙山郡 湯井面 銅山里)에 세거하고 있다.

※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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