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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명종(柳命宗)
 

류 명 종 柳  命  宗

 

<류명종 : 1776~1815 : 純祖朝 孝行 大丞公 28世 : 左相公派>

 

자 회원(會元). 초정(草亭).

서산 자미(西山 自湄)의 12대손이요, 농포 희달(弄圃 希達)의 6대손이요, 영석(永錫)의 아들로 영조(英祖) 52년 丙申 9월에 나주 신촌(羅州 莘村), 지금 광산군 본량면 동호리에서 태어났다.

13세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를 모시되 집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지체(志體)의 봉양을 극진히 하고, 모친께서 병환으로 위독하심에 약을 반드시 맛을 보아 드리고, 옷에 띠를 풀지 않고 간호하였으며 밤에는 하늘에 자신을 대신해 주도록 간곡히 빌었다. 마침내 돌아가심에 등마루가 헐고 뼈만 앙상하여 거의 죽기에 이르렀으나 상복(喪服)을 벗지 않고, 장례에 또한 성의를 다하였다. 묘소가 집에서 5리 거리에 계셨는데 매일 성소(省掃)하여 춥고, 더웁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올지라도 한번도 빠짐이 없었으며 애통히 눈물을 흘려 묘초(墓草)가 다 말라 죽으니 종족은 물론 향당에서 관감(觀感)하고 칭송하지 않음이 없었다.

예의(禮儀)로써 몸가짐을 하고, 법도(法度)로써 집을 다스리며, 의리(義理)로써 자녀들을 가르치고, 은혜로써 아랫 사람을 대하니 규문(閨門)이 엄숙하여 조정과 같았다.

순조(純祖) 15년 乙亥에 졸하니 겨우 40세였다.

고을과 도내(道內) 유림(儒林)의 천거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난와 오계수(難窩 吳繼沫)가 공의 행장을 지었다.

배위 영광정씨(靈光丁氏)는 처봉(處胤)의 따님으로 2남 1녀를 두고 졸하니 동호리 신촌 상록 갑좌(東湖里 莘村 上麓 甲坐)에 합부하였다.

장남은 흥일(興一)이요, 차남은 흥팔(興八)인데 족숙(族叔) 명옥(命玉) 후로 출계하였으며, 따님은 풍산 홍흠모(豐山 洪欽謨)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본량면 신촌(本良面 莘村)에 세거하고 있다.

※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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