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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이복(柳以復)
 

류 이 복 柳  以  復

 

<류이복 : 1724~1789 : 正祖朝 學行 大丞公 28世 : 忠景公派>

 

자 천심(天心). 호 신암(愼鳶).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13대손이요, 현감 선장(縣監 善長)의 11대손이요, 장연훈도 희연(長連訓導 希淵)의 7대손이요, 명(蓂)의 장남이요, 의성김백령(義城金百齡)의 외손이다.

경종(景宗) 4년 甲辰에 곡산(谷山)에서 태어났는데 재주가 대단히 뛰어나 숙부 협(榮)에게 글을 배워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문사(文辭)가 날로 진취하여 경전(經傅)을 널리 보고, 도의 (道義)로서 몸을 닦아 마침내 거유(巨儒)가 되었다.

영조(英祖) 28년 壬申(1752)에 부친을 여의고 죽을 먹으면서 여묘(廬墓)로 복을 마치었다. 이로부터 출입을 끊고 자취를 감추어 후진을 인도하여 순순히 가르치며 여생을 즐기었다.

향리의 유림(儒林)들이 공의 효행과 학문을 누차 천거하였으나 쓰이지 못하고 초야에 묻쳐 살므로 당시에 애석히 여기었다. 정조(正祖) 13년 己酉에 졸하니 향년 66세였다.

배위 요산이씨(遼山李氏)는 복희(復熙)의 따님이요, 청주한씨(淸州韓氏)는 화수(和守)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두어 장자 정눌(定訥)은 정훈(庭訓)을 독실히 익혀 경전(經傳)을 탐구하더니 중년에 삼척(三陟)으로 이거하여 안빈락도 교적후진(安貧樂道 敎迪後進)으로 여생을 즐기니 향당에서 동강처사(東同處士)라 일컫고, 행의고상(行義高尙)으로 천거하였다.

차자 상눌(尙訥)은 무후하고, 1녀는 요산이인철(遼山李仁喆)에게 출가하였다.

자손은 지금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江原道 東海市 松亭洞)에 10여호가 살고 있다.

※ 追先錄, 丙寅譜, 世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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