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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하범(柳河範)
 

류 하 범 柳  河  範 

 

<류하범 : 1824~ 1886 : 高宗朝 行誼 大丞公 32世 : 祇候使公派>

자 석언(錫彦). 호 병와(屛窩).

정암습 (靖暗 顧)의 11대손이요, 열우(說雨)의 2자인데, 종숙 용우(庸雨) 후로 출계하였다.

순조 24년 甲申생인데 이듬해 부친을 여의고, 항상 낯을 보지 못한것을 지극히 애통히 여기고, 모친을 효성으로 섬겨 곤궁한 중에도 감지(甘旨)의 공양을 빠짐이 없었고, 돌아가심에 3년의 복제(服制)를 어김없이 행하였으며, 또한 양모(養母)를 섬김에도 똑 같았다.

총명함이 뛰어나 I5세에 우공장(禹貢章)을 읽되 한번 보면 문득 외웠다. 한편 행의가 단아하고 곧았으며 문사(文詞)가 정밀하여 만년에는 후학을 권장하는데 정력을 다하다가 고종 23년 丙成에 63세로 졸하니 도장동 대등산 천지석하 간좌(道藏洞 大嶝山 天池石下 艮坐)에 모시었다.

배위 남양흥씨(南繼洪氏)는 희원(禧遠)의 따님으로 원식1 남 2녀를 두어 원식(元軾)과 김해김인배(金海金仁培) ․ 남양홍재엽(南暘洪在琫 )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원식(元軾)은자 선숙(善叔)이요, 호 호은(湖隱)인데 뜻을 독실히 하고 학문에 힘써 마침내 가업을 계술(繼述)하고, 후생을 도적(導迪)함으로 평생을 마쳤으며, 한편 필법이 정민(精敏)하였다. 출가한 누이가 가세(家勢)가 곤궁하여 자립하지 못함으로 온 식구를 데려다가 힘을 다하여 구원히니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여 이르기를 『부자로 살면서 가난한 이를 구하긴 쉬우나, 가난하면서 가난한 이를 구하긴 어려운 일이다』하였다.

자손은 군위군 효령연 병호동(軍咸郡 孝令面 屛湖洞)에 살고 있다.

※ 追先錄, 丙辰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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