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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재록 배위 무안박씨(務安朴氏)

류재록 배위 무안박씨 務 安 朴 氏

<류재록 배위 무안박씨, 1916.1.9 : 孝烈婦, 忠景公派 : 大丞公 33世>

박씨(朴氏)의 관향은 무안(務安)이니 기신(淇新)의 따님으로 무안읍 도산리(務安邑 道山里)에

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규범(閨範)을 갖추어 칭송이 자자하더니 15세에 출가, 류재록(柳在祿)의 배위가 되었다.

류재록(柳在祿)은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후예로 진안현감 여강(鎭安監監 如岡)의 13대손이요, 화설당 운(花雪堂 運)의 10대손이요, 신와 진기(愼窩 軫墓)의 증손이요, 인옥(寅沃)의 손이요, 학렬(學烈)의 아들이다.

부인께서 우귀(于歸)후로 구고(舅姑)를 지성으로 섬겨 아침 저녁으로 거처를 살피고 혹 새로운

음식을 얻으면 비록 채소나 과일 일지라도 먼저 입에 넣지 않고 반드시 구고에게 갖다드리고, 맛있는 반찬을 정성껏 장만하여 올림은 물론 범백사(凡百事)에 뜻을 순종하여 항상 심기(心氣)를 편안케 해드렸다. 그리고 조금치라도 환후(患條)가 계시면 갖가지로 간호함은 물론 저녁마다 목욕제계 한 후 하늘에 기원하는 등 온갖 지성을 다하고 막상 친상(親喪)을 당해서는 애척(哀慽)함이 예제(禮制)를 넘었고 상장(喪葬)의 절차를 극진히 행하였다. 제사를 받들되 지성을 다하여 풍결(豐潔)히 함은 물론 선세의 기일(忌日)에도 또한 여전하였다.

부군(未君)을 섬기되 예경(禮敬)을 다하여 손님 대하듯 하며, 신혼기(新婚期)를 보내던 어느날 밤 부군께서 갑자기 폭질(暴疾)로 운명하기에 이르자 부인께서 단방 묘약(單方 妙藥)을 입에 먹음어 부군의 입에 넣으니 잠시 후에 회생하였다. 그로부터 수년후에 부군께서 들에 나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풍질(風疾)로 졸도(猝倒)하여 위급하던 중 부인께서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와 백방(百方)으로 약을 구하여 치료함은 물론 대소변을 가리고 눕히고 일으키는 등 잠시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십여년을 하루같이 행하여 마침내 호정(戶庭) 출입은 하게 되었으나 수전증(手顫症)은 여전하여 식사때마다 부인께서 수저를 들어 공양하였다. 이렇듯 부군의 수발은 물론, 시부모의 상을 마치고 어린 자녀들을 길러 성취시키는데 실로 뼈를 깎는 괴로움이었지만 만난

(萬難)을 극복하고 끈끈이 살아가는 부인의 훌륭한 행실에 감동한 종족과 향당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드디어 1956년 8월에는 무안향교(務安鄕交)와 광주향교(光州鄕交) 유림(儒林)에서 부인의 사행(事行)을 각 고을에 알리는 통장(通狀)이 있었다.

1986년 7월에 자녀들이 모친의 아름다운 행실과 높은 은덕을 기리는 뜻에서 화설당 마을 앞에 효열각(孝烈閣)을 건립하였는데 기행비(紀行碑)는 무안 박양규(務安 朴穰奎)가 지었다.

3남 3녀를 두어 아들은 준선(俊善), 경현(景鉉), 화선(化善)이며 사위는 나주 정해각(羅州 丁海珏), 광산 김경석(光山 金京錫), 함양 이승남(咸陽 李承南)이다.

자손들은 무안군 청계면 사마리 화설당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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