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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영도(柳永燾)


 

류 영 도 柳 永 燾

字는 汝一 호는 春溪
(純祖 戊辰 180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대승공 29대손 


중문지후사공파 부는 형관 (亨觀) 조부는 성흡(聖洽) 증조부 태손(泰遜) 외조


부 정서규이다.


고종 7년(庚午) 1870년 63세로 회갑 넘은 나이에 식년시 병과 7위로 문과에 급제


하였으니 혹여 조선시대 기네스북이 허용되었다면 등재감이라고 볼 수 있


다. 정언, 掌令(장령)職을 맡았으며. 당시 거주지는 장단


문양부원군 류자신의 9대손으로 지금의 시흥시 능곡동 부원군의 묘역 영모


재에 일가들과 만남을 갖으며 어울려 다음과 같은 시문을 남겼다.


 

원문

              吾宗永慕足鑑柯
      堂在淸幽不在華

百世孝心能纘業 이요  千年慶事好傳家

於斯顯矣先塋頀 하니  不亦美乎後裔多

扁號講絃尤有意 하니  此中深趣向人誇

   棟宇翼然逈出塵 하     聯綿基業到今新 이라

   玉樓勝事何年度 요     百感依依一夢春 이라

                    

希亮 九世孫  永道(燾) 


     오종영모족감가 니         당재청유부재화 라

     백세효심능찬업 이요       천년경사호전가 라

     어사현의선영호 하니       불역미호후예다 요

     편호강현우유의 하니       차중심취향인과 라

       동우익연형출진 하니       연면기업도금신 이라

       옥누승사하년도 요         백감의의일몽춘 이라

 


우리 종중 영모 당이 족히 모범이거니 집이 그윽한 곳에 있어 번화하지 않도다

백세 효심은 능히 선업을 잇고 천년경사는 아름답게 전해오는 집일세

선영 수호함은 이에 더욱 드러나고 후예 많음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현판 이름을 강 현이라 함은 더욱 뜻이 있으니 이 가운데 깊은 뜻을 남에게 보였으면

날을 듯 한 집이 풍진에서 떨어져 있고 면면히 이어온 기업은 이제 더욱 새롭도다

옥루에 좋은 일은 어느 때인가 헤아리니 많은 생각 어릿어릿 한낮 춘몽 일러라



조선왕조실록 발췌분(상소문)
 

고종 11권, 11년(1874 갑술 / 청 동치(同治) 13년) 3월 11일(계축) 2번째기사


전 장령 유영도가 상소를 올려 백성들이 장사지낼 땅이 없음을 아뢰다


전 장령(掌令) 유영도(柳永燾)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옛날에 과거제도를 만들어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일 때 문필(文筆)이 없는 사람은 입장할 수 없었으니, 당대 명유(名儒)들이 전부 방중(榜中)에 들어갔습니다. 대과(大科)·소과(小科)의 폐단이 근래에 더욱 심해졌습니다. 비록 갑자기 고칠 수는 없더라도 한결같이 정묘조(正廟朝)의 옛 규정을 준수하여 문(門)에 들어가는 것과 대면하고 시험보이는 것을 반드시 엄하고 정밀하게 하소서. 그러면 거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신은 여항(閭巷)에서 늙어 향촌에 사는 권세가(權勢家)들이 산림을 널리 차지하여 다른 사람이 들어가 묘를 쓰면 금지하지 않아야 하는 곳도 금지하여 가난하고 약한 백성들은 묘소를 쓸 곳이 없으니, 이것이 첫 번째 폐단입니다. 도성의 저자에서 놀고먹는 백성들이 함부로 술과 도박을 하다가 파산하여 유랑(流浪)하는 지경에 이르니, 이것이 두 번째 폐단입니다. 백성들의 풍속(風俗)이 순후하지 못하여 청탁이 몹시 심하니, 이것이 세 번째 폐단입니다. 무릇 이 세 가지 폐단을 일체 금지하면 그것이 백성들을 교화(敎化)하고 풍속을 순화하는 정사(政事)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진달한 것이 대단히 옳다.”

하였다.

 


2011.3.1.後孫 柳志世 조선왕조실록과 문과방목 등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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