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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의령남씨(宜寧南氏)


의령남씨 宜 寧 南 氏

<의령남씨 : 柳基中 配 烈婦, 1879,12.19~1952.10.26, 忠景公派 : 大丞公 30世, 부안군 하서면 백연>

문충공(文忠公) 남구만(南九萬)의 후손이요, 감찰공(監察公) 계행(啓行)의 따님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천성이 온유하여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고, 향리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17세에 류문(柳門)으로 출가하여 기중(基中)의 배위가 되었다.

기중(基中)은 소윤 한생(少尹 漢生)의 4자 신천군수 작(信川郡守 綽)의 후예로 추암 선민(秋岩 先民)의 3자 연기현감(燕岐縣監) 노강 동발(老岡 東發)의 10대손이요, 상일(上一)의 손자요, 광로(匡魯)의 2자이다.

부군이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중병으로 병상에 눕게 되자 부인은 백방으로 양의(良醫)를 찾아 약을 구하여 쓰고 하늘에 기도하며 혼신의 정성을 기울였으나 보람도 없이 결혼한지 수년만에 끝내 운명 하였다.

호곡(號哭) 기절(氣絶)하며 간신히 장례를 모시고 부군을 순종(殉從)코자 여러날 식음을 전폐하였으나 한편으로 부군의 후사가 없음을 생각하며 살아서 입사(立嗣)하여 가통을 잇게 하는 것이 도리임을 깨닫고, 이후 3년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의 묘소를 성소(省婦)하는데 때로는 범이 나타나 호위 했다고 하니 실로 미물도 열행에 감동했음이 아니랴.

그후 조카 인규(寅奎)를 입양하여 가계를 잇게 하니 향유(鄕儒)가 칭송하고 도지사에게 계장(啓狀)하어 1934년 전북지사(全北知事)가 표창장을 수여하고 부상을 내렸다. 이 사실이<湖南三綱錄>에 기록되었다.

논자 명렬(明烈)이 부안 하서면 백인리에 거주하며 안동김씨 선규(善奎)의 따님과 결혼하여 아들 넷을 두니 정옥(廷玉) ․ 정람(延灠) ․ 정윤(延允) ․ 정행(延幸)이요. 딸은 연일 정남주(延日 鄭南柱), 평강 채종석(平康 蔡鍾錫)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묘는 부안군 하서면 백연리 광계후록 자좌(子坐)에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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