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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경주김씨(慶州金氏)


경 주 김 씨 慶 州 金 氏

<경 주 김 씨 : 柳寅玉 配, 1896~1950, 孝烈婦, 忠景公派 大丞公 31世, 부안군 하서면 백연리 대광계>

경주김씨는 인제(麟濟)의 따님으로 태어나 나이 17세에 류문(柳門)으로 출가하니 부군 인옥(寅玉)을 노강 동발(老岡 東發)의 11대손이요, 용로(庸魯)의 손이요, 기원(基元)의 장자이다.

부인 천성이 정숙(貞淑)하고 부덕(端德)을 모두 갖추어 시부모를 봉양하고 부군(夫君)을 섬김에 그 성심을 다하니 종족과 향리에서 그 현숙함을 칭송하였다.

시고(媤姑)에서 별세하시자 편시부(偏媤父)를 심력(心力)을 다하며 봉양하였는데, 6 ․ 25동란을 당하여 이곳 부안하서면 백연리의 적도(赤徒)들이 양민을 대량으로 학살함으로 부군을 권하여 피난케하고, 다만 자신은 위험을 무릎 쓰고 시부를 모시고 홀로 봉양을 극친하였다.

하룻밤 적도들 수백명이 촌중(村中)에 돌입하여 민가를 연달아 불태우고 사람들을 모두 잡아가는데, 그때 김씨부인은 잠깐 이 움집에 가 있다가 시부가 그들에게 피집(被執) 되었다는 말을 듣고 창황히 귀가 노친의 구명을 애걸하였으나 불인무의(不仁無義)한 도배들은 그 구부(舅婦)를 아울러 한 구덩이에 한꺼번에 몰아 넣고 처참히 살해하였다.

그후 시체를 발굴하니 남녀 시체 10여구가 각기 구덩이 속에서 흩어져 있었으나 오직 김씨부인만은 그 시부의 겨드랑이를 붙들고 죽어 있었다.

대개 보통사람이면 이같은 흉험한 때를 당하여 비록 자제나 부형 일지라도 도망하여 생명(生命)을 보전하였을 터인데 한낱 부인이 되어 조금도 겁내지 아니하고 마침내 시부를 모시고 함께 피해를 당하였다는 것은, 만약 천성이 순효(純孝)치 못하고서는 능히 이와같았겠는가. 이러한 효열행이 원근에 알려지자 부안의 사림(士林)이 계천(啓薦)하여, 1956년 4월에 부안 하서면 백연리 대광계 남록(大廣溪 南麓) 묘하에 손자 정기(廷琪)가 효열비(孝烈碑)를 건립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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