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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편집인
  제    목  류흥명(柳興明)



류흥명 (柳 興 明)
   조회 : 0   스크랩 : 0   날짜 : 2010.05.20 00:39
 

<류흥명 : 자 낙중 洛中, 호 곡은谷隱, 1872.7.27~1945.5.18, 行誼, 충경공파: 大丞公 29世>


금산군수 약(錦山郡守 約)의 후예로 증판결사 극형(贈判決事 克聲)의 8대손이요, 병록(秉綠)의 손이요, 화계 엽(華溪 燁)의 2자로 장수 계남면 화양리에서 태어났다.

공은 천성이 어질어 가정교훈을 잘 익히고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여 어버이의 뜻과 몸을 평안히 봉양하였다.

일찌기 사문(師門)에서 한학수업에 정진하여 사서삼경과 제자서(諸子書)를 통명(通明)하고 국운이 날로 이즈러짐을 보고 사진(仕進)에 뜻을 끊고 후생들을 지도하며 낙을 산수간(山水間)에 붙쳐 시률을 자음하며 여생을 마쳤다.

만년에는 정자에 올라 조석으로 연운의 변화와 봄 가을로 화월(花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늙음이 장차 이름을 알지 못하여 마치 신선의 경지와 같았다. 이에 사방의 많은 사우들이 공의 학문과 지취를 흠모하였다.

배위 창녕조씨(昌寧曺氏)는 영칠(永七)의 따님으로, 3남 3녀를 두니 아들은 기민(基珉) ․ 기현(基絢) ․ 기완(基浣)이요, 딸은 청주 한규호(淸州 韓圭浩) ․ 경주 김봉진(慶州 金鳳鎭) ․ 청주 한윤석(淸州 韓允錫)에게 출가하였다.

향년 74세로 별세하시니 계남면 음신리 선영하산직촌 후록 손좌( 巽坐)에 묻히셨다.

1949년에 완산 최병심(完山 崔秉心)이 공의 묘갈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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