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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경주이씨(慶州李氏)


경주이씨 慶 州 李 氏

<경주이씨 : 柳南烈 配立, 1911~1929, 烈婦, 忠景公派 : 大丞公 32世,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성주이씨는 동영(東榮)의 따님이다.

부군 류남렬(柳南烈)은 옥천군수 수장(沃川郡守 壽長)의 후예로 훈련원판관 희철(訓練院判官 希哲)의 9대손이요, 석광(錫光)의 증손이요, 예영(禮永)의 손이요, 인화(寅華)의 장남이다.

17세에 결혼, 우귀(干歸)한지 불과 수일에 부군이 뜻하지 않은 병으로 문득 자리에 눕자 부인이 매일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자신을 대신해주도록 간절히 원하는 한편 갖가지 시탕(侍湯)으로 정성을 다하였으나 끝내 별세하였다. 부인께서 즉시 하종(下徒)코자 하였으나, 가인(家人)들이 70고령의 시조모(媤祖母)와 시부모(媤父母)를 봉양할 사람이 없음을 들어 만단(萬端)으로 위로하고 말리었다.

부인은 마음을 돌이키고 억지로 일어나 초종(初終)을 치른 후 시부모의 슬픔을 자극할까 두려워 곡읍(哭泣)을 억제하고 위로 어른들을 섬김에 더욱 성의와 공경을 다하였다.

겉으로는 비록 뜻을 따랐지만 속으로는 애원(哀寃)을 품어 이로 인하여 담화(痰火)가 엉키고 음식이 소화되지 않았다. 이에 시부께서 의원을 맞아 진찰하려고 하자, 부인이 끝내 응하지 않고 눈물을 머금고 아뢰기를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에 있는 것인데 그렇게 진찰 ․ 치료하여 연명한들 어찌 속히 죽어 동혈(同穴)함만 같겠습니까?』하였다.

상기(喪期)를 겨우 마치고, 3일만에 별세하니 1929년 3월 3일로 당년 19세였다. 유림(儒林)에서 부인의 특이한 열행(烈行)을 감탄한 나머지 천장(薦狀)을 불러 이듬해 윤6월에 경성(京域) 유림향약본소(倫林鄕約本所)로 부터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이 내리었다.

묘소는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沃川郡 郡北面 大亭里) 화산 중록 술좌(花山 中麓 戌座) 부군 묘소에 합부로 모시었다.

자녀가 없어 공의 중제 헌렬(仲弟 憲烈)의 3자 지은(志殷)으로 계자하였다.

※褒彰完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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