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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김씨(金氏)
 

김 씨 金  氏

 

<김씨 : ?~1798 : 正祖朝 烈婦 大丞公 27世 : 忠景公派>

 

김씨(金氏)는 광산인(光山人)인데 출가하여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12대손이요. 훈련원판관 희철(訓鍊淸判官 希哲)의 현손이요, 운백(連百)의 장자인 환요(煥堯)의 배위가 되었다.

천성이 매우 어질어 부덕(婦德)이 있더니 결흔한 후 시부모를 잘 섬겨 정성(定省)의 절차와 감지(甘旨)의 공양에 정성을 다하고 부군(夫君)을 공경하여 조금도 뜻을 어김이 없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정조(正祖) 22년 戊午(1798) 정월 21일 갑자기 부군(夫君)께서 돌아가시는 비운(悲運)을 맞아 망극하기 그지 없었으나 슬픈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초종(初終)의 범절에 정성과 예의를 다 갖추었다.

겨우 빈소(殯所)를 마련한 후 침실에 들어가 조용히 순절(殉節)하니 부군이 돌아가신지 겨우 10일로 2월 1일이었다.

묘소는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이수동 입구 유좌(沃fll郡 郡北面 大亭里 梨水洞 入口 酉坐)에 합폄으로 모셔졌다.

이웃 마을에서 그 열행(烈行)을 경탄(驚歎)하고 옥천(沃川) 유생(儒生)들과 함께 순조(純祖) 9년 己巳(1809)에 포상을 청하는 유장(儒狀)을 영읍(營邑)에 올리고, 이어 壬申(1812)에 도내(道內)의 유생(儒生)들이 감영(監營)과 예조(禮曹)에 천장을 올렸으나 포양(褻楊)의 은전을 얻지 못하였다.

공의 아우 환린(煥麟)이 장자 신재(新載)를 출계시켜 공의 제자를 삼았다.

신재(新載)가 배위 의성김씨(義城金氏) 영택(永宅)의 따님과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어 아들은 석태(錫台)와 석익(錫翊)이요, 따님은 예안 이(禮安 李)와 의령 남병흠(宜寧 南炳欽)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논산군 양촌면 명암리(論山郡 陽村面 鳴岩里)에 살고 있다.

※ 忠景公派譜.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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