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김씨(金氏)
 

김 씨 金  氏

 

<김씨 : 1782~1819 : 純祖朝 烈行 大丞公 27世 : 忠景公派>

 

김씨(金氏)는 김해인(金海人)으로 일현(一顯)의 따님인데 정조(正祖) 6년 壬寅 10월서부터 정숙한 부덕 (婦德)이 있었다.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12대손이요, 훈련원판관 희철(訓鍊院判官 希哲)의 현손이요. 운섭 (雲燮)의 아들인 환수(煥秀)에게 16세에 출가, 그 배위(配位)가 되었다.

부군이 기질(奇疾)이 있어 무릇 7년 동안을 약이(藥餌)의 시중을 들며 간호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마침내 돌아가심에 염습(驗襲)으로부터 상제(祥祭)에 이르기까지 정례(情禮)를 다 갖추어 행하였다.

친정 부모(親庭 父母)가 딸이 아들도 없이 일찍 과부(寡婦)가 된 것을 애석히 여기고 개가(改嫁) 할 것을 종용하니 김씨 부인(金氏 夫人)이 말하기를『부군을 일찍 잃은 것은 이 말의 기박한 운명이니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늙은 시아버님이 생존하시어 봉양할 사람이 없는데 금수의 행동을 내가 어찌 차마 하겠나이까?』하였다. 그 부모가 그 뜻을 알고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시아버님께서 풍증(風症)으로 앉고 누움을 남에게 의탁하였는데 김씨(金氏)가 지성을 다하여 부호(扶護), 11년동안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고 늙어 돌아가심에 예절(禮節)을 다하여 상기(喪期)를 마치고 공의 종제 환혜(從弟 煥惠)의 2자 동재(東載)를 맞아 계자를 삼고 봉사(奉祀)토록 하였다. 동재 역시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지절(定省之節)과 감지지공(甘旨之供)에 빠짐이 없어 향당에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순조(純祖) 19년 己卯 2월 13일 졸하니 겨우 38세로 옥천군 군복면 대정리 와정 선영 백호 말록 을좌(沃Jil郡 郡北面 大亭里 瓦亭 先塋 白虎 末麓 乙坐)에 부군과 쌍분으로 모셨다.

고을에서 부인의 지행(至行)을 흠모하여 유장(儒狀)이 있었다.

※ 儒狀

 

 


 
       

Next   류세헌(柳世憲) 편집인
Prev   김씨(金氏)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