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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김씨(金氏)
 

김 씨 金  氏

 

<김씨 : ?~1872 : 高宗朝 烈婦 : 大丞公 29世 : 侍郎公派>

 

김씨(金氏)는 안동인(安東人)으로 재겸(在謙)의 따님인데 출가하여 양양부사 기풍(襄陽府使 基豐)의 3자 통덕량 성호(通德郎 成鎬)의 배위가 되었다.

작은 자부(子婦)로서 지성으로 시어머님을 섬기더니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심에 맏며느리의 책임을 전담하여 3년의 상식(上貪)과 누대(累代)제사를 지성으로 봉행(奉行)하였다. 맏동서가 풍병으로 고생함에 성의를 다하여 간호하고 드디어 돌아가심에 후사(后飼)가 없이 일찍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궤전(饋奠)을 한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종(高宗) 9년 壬申(1872) 9월, 갑자기 부군께서 돌아가심에 울부짖어 뛰기 몇차례더니 이윽고 슬음을 억제하고, 시숙(媤叔) 면호(冕鎬)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속히 장례를 행하고, 새로 총부(家婦)를 맞이하여 가사(家事)를 맡겨야 합니다.』하였다.

장사(葬事) 전일에 시숙(媤叔)께 아뢰기를 『부군께서 돌아가시던 날 즉시 하종(下從)해야 당연하나 가사를 맡길 곳이 없어 이루지 못했읍니다. 그리고 부군의 후사를 정하지 못했으니 또한 죄인입니다. 원컨데 헤아려 조처해 주십시요.』하고 그로부터 수음(水飮)을 전궤한지 14일만에 유서(遺書)를 써놓고 돌아가시니 동년 10월 28일이었다. 소렴(小殮)때에 우뢰와 번개가 치고 큰 새가 문밖에 와서 울더니 장례를 치른 후에 날아가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열성이 격앙한 소치라 하였고, 유림(儒林)에서 천장(薦狀)을 올려 정려(旌闊)의 은전이 있었다.

공의 족형 익호(益鎬)의 2자 영년(永年)이 입계(入系)하여 자손이 청원군 남일면 가중리(淸原郡 南-面 佳中里)에 살고 있다.

※ 儒狀, 丙寅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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