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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김씨(金氏)
 

김 씨 金  氏

 

<김씨 : 1863~1929 : 高宗朝 烈行, 大丞公 30世 : 夏亭公派>

 

김씨(金氏)는 의성인(義城人)으로 오봉 제민(鰲峰 齊閔)의 후손이요, 정재(正載)의 따님인데, 출가하여 부제학 회저(副提學 회渚)의 9대손이요, 침야 범주(枕野 範疇)의 손이요 흥철(興渽)의 3자인 성연(成淵)의 배위가 되었다.

철종 14년 癸亥 11월 4일생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더니 18세에 류문(柳門)에 출가, 미처 재요(再?)도 못되어 부군의 부음(訃音)이 이르자, 김씨(金氏)께서 즉시 자결코자 하였으나 친가(親家)의 만류로 드디어 분상(奔喪), 교자(轎子)에서 내린 즉시 감추고 있던 작은 칼로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부군의 입에 흘려 넣으니 입에 먹음으려다 삼키지 못하고 눈을 뜨려다가 바로 눈을 감았다. 김씨(金氏)가 울부짖기 반나절에 주부(主婦)의 책임을 돌이켜 생각하고 송종(送終)의 의금(衣衾)을 손수 바느질하고, 조석(朝夕)의 상식(上食)을 힘써 정결히 올려 3년을 마치고는 담제(禫祭)를 마친 후 하종(下從)코자 하였으나 가인(家人)의 감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드디어 탄식하여 이르기를 『내 비록 운명이 기박하여 부군을 잃었으나 만약 하종한다면 부군의 제사(祭祀)를 장차 누가 받드리요, 부군의 후사(后嗣)를 구하여 문호(門戶)를 보전함이 급한 일이 아니겠는가?』하고 슬픔을 억제하고 치산(治産)에 힘써 가세가 점점 윤택해지자 삼종 시숙(三從 媤叔) 상연(相淵)의 장자 인종(寅琮)을 맞아 계자하였다. 인종 역시 모친의 뜻을 잘 받들어 능히 가업(家業)을 이음에 김씨(金氏)가 편안히 여생(餘生)을 누리다가 己巳 8월 11일 졸하니 향년 67세로 달천 후록(達川 後麓) 고위 묘소 오른쪽에 모시었다.

고을에서 부인의 열행(烈行)을 아름다히 칭송하고 천장(薦狀)이 있었으며 종인(宗人) 죽당 인봉(竹堂 寅鳳)이 부인의 행장을 지었다.

인종(寅琮)이 4남을 두어 자손들이 정읍군 덕천면 달천리(井邑郡 德川面 達川里)에 살고 있다.

※?洲誌,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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