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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강씨(姜氏)
 

강 씨 姜  氏

 

<강씨 : 1847~1885 : 高宗朝 婦行 大丞公 30世 : 忠景公派>

 

강씨(姜氏)의 관향은 진주(晋州)로 영달(永達)의 따님인데 출가하여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15대손이요, 참봉 은(參奉 垽)의 3자 연수(沿秀)의 10대손이요, 인근(仁根)의 2자인 기태(基泰)의 배위가 되었다.

헌종(憲宗) 13년 丁未 6월 18일생인데 자품(姿品)이 단결 정숙(端潔 貞淑)하여 어려서부터 어버이에 효도할 줄을 능히 알더니 17세에 류문(柳門)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부군을 예절로써 받들며 제반 행사가 부도(婦道)에 어긋남이 없었다.

고종(高宗) 20년 癸未(1883)에 부군께서 병환이 침중하여 날마다 약탕(藥湯)과 침구(針灸)를 곁들여 지성으로 간병(看病)하였으나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낮이면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밤마다 반드시 목욕재계 후에 옷을 갈아 입고 산을 넘어 물을 길러다가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을 대신해 줄 것을 간곡히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느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동쪽으로 고씨 의원(高氏 醫員)의 약을 먹으면 효험이 있으리라』하였다. 곧바로 찾아가 그 약을 구하여 과연 신통한 효험을 보아 부군의 병이 완쾌되었다. 이에 앞서 밤마다 물을 길러 나가면,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앞길을 인도하였다. 불행히도 부인께서 1년 남첫 후에 돌아가시니 때는 고종(高宗) 22년 乙酉 정월 17일로서 겨우 39세였다. 부인께서 돌아가시자 개 역시 어디로 가버려 종적을 알지 못했다고 전한다.

묘소는 대덕군탄동면내동리 후록 선영하술좌(大德郡炭洞面內洞里 後麓 先塋下戌坐)에 모셔졌으며 명와 김준영(明窩 金駿榮)이 묘갈명을 짖고, 간재 전 우(艮齋 田 愚)가 행록(行錄)을 지었다.

6남 1녀를 두어 인훈(寅勳) ․ 인희(寅羲) ․ 인하(寅夏) ․ 인상(寅商) ․ 인숙(寅淑) ․ 인로(寅魯)와 해주오인환 (海州吳仁煥)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부인께서 일찍 돌아가시자 부군께서 재취(再娶)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인한(寅漢)이요, 사위는

밀양박준흥(密陽朴準興) ․ 남양홍종선(南陽洪鐘善)이다.

※ 墓碣銘, 丙寅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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