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문화류씨포럼
  파 일 1  58_1.jpg (40.1 KB) Download : 7
  파 일 2  58_2.jpg (60.9 KB) Download : 4
  제    목  興明配 金海金氏


興明配 金海金氏

<효열부 : 1892~1980 하정공파, 대승공 29세>

영암군수(靈岩郡守) 희정(希汀)의 12대손이요, 석오(錫五)의 2자 흥명(興明)의 배위이다. 흥명(興明)은 본래 행의(行誼) 독실하여 사우(士友)들의 추중(推重)을 받았는데 그 부인 김씨는 판도판서 관(管)의 후예로써 일찌기 어려서 부터 아내로서의 부덕과 며느리로서의 사친(事親)하는 절도를 능히 알고 류씨 가문에 입가하여 시부모를 지효(至孝)로써 섬기고, 부군(夫君)을 지극히 공경하여 모시며 동서간에 화열(和悅)하니 즐거움이 그 집안에 가득하였다.

시부모가 병에 누어 백약이 무효하므로 밤중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쾌유를 기원하고, 운명함에 애통망극하였다.

나이 28세에 부군께서 우연히 기질(奇疾)을 만나 백방으로 구료(救療)하였으나 뚜렷한 효험이 없어 3년을 병상을 떠나지 않고 가산은 탕진되고, 운명에 즈음하여 작지관혈(斫指灌血)로 3일을 연명하다가 수명을 다하였다. 부인은 즉시 하종(下從)코자 하였으나 좌우에서 구호하던 중 2살난 아들이 무릅 위에 올라와 개오(改悟)하여 말하기를 『만약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누가 기를 것이며, 위로는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을 어루만짐은 부자(夫子)의 일점 혈육이 이 굴례(軌)에 있다. 』하고 상장을 예제에 쫒아 행하고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복을 마친 후에는 항상 미망인을 자처하고 화려함을 장식하지 아니하고, 정정(貞靜)을 스스로 지켜 그 아들 재희(才義)를 교양, 가문의 성망(聲望)을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므로써 재희 또한 현량하여 그 경계를 준행하고 극진히 선세의 미적(美蹟)을 따랐다.

손자에 인하(寅蝦)가 있다.


 
       

Next   류근상(柳根庠) 편집인
Prev   류근홍(柳根泓)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