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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인동장씨(仁洞張氏)




인동장씨 仁洞張氏


<인동장씨 : 류인신柳寅新 配位, 1916~1986.5.5, 효열부, 충경공파 . 大丞公 31世,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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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부(孝烈婦) .장씨(張氏)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니 여헌 현광(旅軒 顯光)의 후예로 세환(世煥)의 따님이다.

예절 바른 가문에서 성장하여 규범이 일찍 드러나더니 류문으로 출가하여 인신(寅新)의 배위가 되었다.

인신(寅新)은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少尹 漢生)의 5자 금산군수 약(錦山郡守 約)의 후예로 증판결사 극형(贈判決事 克聲)의 10대손이요, 현(炫)의 증손이요, 흥원(興元)의 손이요, 기성(基聖)의 아들이며, 의관 신천강도문(議官 信川康道文)의 외손이다.

정이 워낙 가난하므로 부인께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도 부도(婦道)를 닦고 행하니 족친은 물론 이웃 마을에서까지 칭송하지 않음이 없었다.

부인의 나이 25세에 갑자기 부군께서 돌아가심에 즉시 따라 죽고k 식음을 전폐하다가 구고(舅姑)가 생존해 계시고 어린애가 보자기에  싸인지라 마음을 돌이키고 상장제전(喪葬祭奠)을 예제에 쫓아 지성으로 행하였다.

이로부터 길쌈 품팔이를 하면서 시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기 20여년, 시모께서 우연히 병식에 누워 3년을 지내는 동안 백방으로 시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천수(天壽)로 돌아가시니 부인이 창황 망극하여 시모의 시체를 붙들고. 통곡하다가 거의 기절하기에 이르렀다.

시부께서 극구 만류하여 드디어 회복, 제반 예절을 부군 상시(喪時)와 같이 행하였다.

이렇듯 훌륭한 효열의 행실이 인정되어 1968년 7월에 장수향교(長水鄕校) 유림의 공의로 포양장(褒揚狀)이 내리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성렬(性烈)이요, 딸은 청주 한종연(淸州 韓宗淵)에게 출가하였다.

※褒揚狀, 派譜


 


※褒揚狀, 派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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