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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장씨(蔣 氏 )
 

장 씨 蔣  氏

 

<장씨 : 1710~ 1786 : 正祖朝 烈行 大丞公 24世 : 左相公派>

 

장씨의 관향은 아산(牙山)이요, 성재 희춘(誠齋 希春)의 후손으로 재욱(載郁)의 따님인데, 서산 자미(西山 自湄)의 8대손 진옥(震沃)의 배위가 되었다.

부인은 숙종(肅宗) 36년 庚寅생으로 어려서부터 숙녀(淑女)의 자질이 있더니 류문(柳門)에 출가한 후로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부군을 공경히 섬기면서 내훈(內訓)을 엄히 행하여 종당의 귀감(龜鑑)이 되었었다 .매양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겠다.』하더니 정조(正祖) 10년 丙午(1786) 10월 7일 부군께서 돌아가시자 부인께서 동혈(同穴)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이날 따라서 돌아가시니 때에 향년 77세 였다.

묘소는 경주 외동면 어영동 선영 신좌(慶州 外東面 魚泳洞 先瑩 辛坐)에 고위(考位)와 합부로 모시었다.

당시 본군 사또 이의일(李義逸)이 이 사실을 감영(監營)에 알려 정조(正祖) 18년 甲寅(1794) 7월, 정려 (旌閭)의 특명이 내린다.

3남 1녀를 두어 학중(學中) ․ 학천(學天) ․ 학묵(學黙)과 벽진이태보(碧珍李泰普)는 아들과 사위이다.

장자 학중(學中)은 자 열경(悅卿)으로 영조(英祖) 8년 壬子(1732) 정월 19일생인데 누차 향시(鄕試)에 들어 문명(文名)이 있더니 23세 되던 甲戌(1754)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울산부사 김우찬(蔚山府使 金愚贊)이 이르기를 『이미 호우에 돈독했고 또한 문학이 뛰어났다.』하고 한편 감영 監營)에 아뢰기를『부친의 병환에 곁에서 모시면서 분뇨(糞尿)를 맛보아 차도를 징험하였고 일적 북학(北學)에 뜻을 두고 13세에 서울에 올라가 학문에 힘써 마침내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몸을 닦았다 합니다.』하였다. 정조(正祖) 8년 甲辰(1784)정월3일 졸하니 향년 53세였다.

공의 후손은 울산군농소면약수동(請山郡農所面藥水洞) ․ 창좌동(昌佐洞) ․ 달천리(達川里) ․ 울산시양정동(蔚山市楊亭洞) ․ 암실동(暗室洞)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 邑誇. 丁巳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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