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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전씨(田氏)
 

전씨 田  氏

 

<전씨 : 1857~? : 高宗朝 烈行 大丞公 27世 : 檢漢城公派>

 

전씨(田氏)의 관향(貫鄕)은 담양(潭陽)이니 목사 여림(軟使 汝霖)의 후손이요 희복(希福 : 一名 鳳信)의 따님으로 철종(哲宗) 8년 丁巳 8월 13일생인데 류문(柳門)으로 출가하여 함안군수 효용(咸安那守 孝庸)의 3자 참봉 인식(參奉 仁湜)의 11대손이요. 석남(錫南)의 아들인 경원(導源 : 初名 義源)의 배위(配位)가 되었다.

부인은 성품이 후덕(厚德)하고 정숙(貞淑)하여 가히 규범(閨範)이 있더니 장성하여 출가함에 구고(舅姑)를 잘 섬기고 부군을 공경히 받들어 부도(婦道)를 능히 행하였다.

불행히도 부군께서 질병으로 수년 동안을 자리에 누워 계심에 백방으로 의약(醫藥)을 써 보았으나 하나도 효험이 없고 급기야 돌아 가시기에 이르자 문득 다리의 살을 베어 약탕(樂湯)에 끓여 드리었다. 마침내 효험을 보아 3년의 명을 연장하고 드디어 세상을 떠남에, 울부짖어 뛰고 가슴을 치다가 기절했더니 얼마 후 소생하여 따라 죽기를 맹세하므로 온 집안에서 놀래어 황급히 구하였다. 부인께서 억지로 목숨을 부지하고 초종(初終)의 상구(喪具)와 상복(喪服) 등을 친히 점검하여 장례(葬禮)를 모시는 절차를 유감없이 행하였다. 이웃 마을에서도 이러한 부인의 정성에 감동하여 모두 가서 도와주고 그 어짊을 칭송하였다. 묘소는 정읍군 입암면 접지리(井邑郡 笠岩面 接芝里) 41번지 자좌원(子坐原)에 부군과 합폄으로 모셔 있다.

유림(儒林)에서 『부인이 일찌기 다리의 살을 베었던 혈성(血誠)은 세상에 짝하기 드문바로서 그 부군(夫君)을 3년동안 연명(延命)케 한것은 하늘에서 감동하여 도우심이라』하고 포양(衰楊)의 의논이 일제히 일어나 천장(蘿狀)을 올림으로써 己巳(1929) 8월에 유회포창사(懦合衰彰社)로부터 포창문(襃彰文)이 내리었다.

부인께서 2남 2녀를 두어 장자 형근(炯根)은 생정 중부 방원(生庭 仲父 邦源)후로 출계하고, 2자는 태근(泰根)이며, 사위는 의성김용순(義城金鏞順)과 원주이재술(原州字在述)이다.

자손들이 정읍군 영원면 풍월리(井邑郡 永元面 豐月里) ․ 고부면 관청리(古阜面 官淸里)등지에서 살다가 지금은 모두 서울로 이거하였다.

※ 衰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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