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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임씨(任氏)
 

임 씨 任  氏

 

<임씨 : 1840~1904 : 高宗期 孝婦 大丞公 28世 : 文平君派>

 

임씨(任氏)는 풍천인(豐川人)으로 지중추 태순(知中樞 泰順)의 따님인데 출가하여 금산군수 지인(金山郡守 之仁)의 14대손이요, 지근(至謹)의 아들인 기익(基益)의 계배(繼配)가 되었다.

헌종(憲宗) 6년 庚子 10월 28일생인데 어려서부터 가정 교훈을 독실히 익혀 여사(女士)의 풍도가 있었다. 17세에 류문(柳門)에 우귀하니 족친(族親)에서 그 어질고 착함을 칭송하고 향당(鄕黨)에서 그 얌전한 행실에 감복하였다. 31세 되던 고종(高宗) 7년 庚午(1870) 3월 6일에 부군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때에 위로 칠순(七旬)의 늙은 시아버님이 계시고, 아래로 부군의 초배(初配) 소생의 병록(秉祿)과 자기가 낳은 병수(秉秀) ․ 병규(秉奎) ․ 병덕(秉德)등 4남이 있었다. 어절수 없이 미망인(未亡人)의 예를 다하여 장례를 마친 후 서너달이 못되어 시아버님께서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문득 산치(山雉)를 잡수고자 하였다. 부인께서 지성으로 하늘에 빌고 눈물을 흘리면서 샘에서 물을 길르는데 갑자기 솔개 한 마리가 꿍 한마리를 채다 던지거늘 드디어 싸가지고 와서 다려 드리어 효험을 보았다.

고종(高宗) 41년 甲辰 12월 17일 졸하니 향년 65세로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칠성암 내기 유좌(被山郡 沙梨面 中興里 七星宕 內基 酉坐)에 안장되었다.

부인의 효열(孝烈)의 행실이 뛰어남으로 사림(士林)에서 천장(鳶狀)이 있었고 삼강록(三綱錄)에 등재(登載)되었으며 청주 한성리(淸州 韓星履)가 묘표를 지었다.

아들들이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부인 사후(死後)에 매일 성묘(省墓)하니 묘소의 길이 환하게 트이었고 무릎끊은 자리가 옴팍 패였다고 한다.

자손이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槐山郡 沙梨面 中興里)에 살고 있다.

※ 丙寅譜.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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