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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도열(柳度列)
 

류 도 열 柳  道  列

 

<류도열 : 1819~1872 : 高宗朝 行誼 大丞公 28世 : 祗候使公派>

 

자 성일(盛一). 호 춘파(春坡).

석헌 옥(石軒 沃)의 후예로 군자감봉사 명(軍資監奉事 溟)의 6대손인 진방(震芳)의 계자이다. 생부(生父)는 처사 전(處士 湔)의 6대손인 진찬(震燥)이다.

순조(純祖) 19년 己卯 10월 22일 창평 유곡(昌平 維谷)에서 태어났는데 젊어서부터 위선(爲先)에 성의가 있었고, 몸 가짐이 법도가 있었다.

기질(氣質)이 호협하여 일적 풍악(楓嶽)을 유람하면서 만폭동(萬瀑洞)의 석벽(石壁)에 시를 지어 새기고 다시 방장산(方丈山)에 올라 청학동기(靑鶴洞記)를 지었다.

석헌 선조의 증시(贈證)를 청할 때에 심력을 다하여 주선하였으며, 그에 따른 명경(名卿)과의 왕복서한이 많이 전하고 있다.

고종(高宗) 9년 壬申 2월 29일 졸하니 향년 54세로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 내동 묘암(潭陽郡 昌平面 維谷里 內洞 猫岩) 아래 신좌(辛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종섭(宗燮)의 따님으로 1남 2녀를 두고, 김해김씨(金海金氏)는 1남을 두었다.

아들은 환룡(煥龍) ․ 환천(煥天)이요, 따님은 해미곽종선(海美郭宗璇) ․ 제주양상익(濟州梁相翼)에 게 출가하였다.

입헌 김종가(立軒 金種嘉)가 공의 묘갈명을 지었다.

장자 환용(煥龍)이 성품이 효성스러웠는데 7세에 모부인(母夫人)께서 병세가 점점 위독하여 탕약(湯藥)의 효험이 전혀 없자, 밤낮으로 걱정이 되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잡숫고 싶은 것을 반드시 시중을 들었다. 이때가 8월인데 청하는 것이 냉과(冷果)임으로 구하고자 뒤안 뜰에 가보니 배가 아직 푸른지라 문득 나무를 보듬고 울부짖었다. 하를 밤을 자고 나니 완연히 서리를 맞아 맛을 보니 맛이 가히 먹음직스런 지라 따다가 드리어 입에 침이 나도록 도우니 동리(洞里)에서 듣는 이마다 모두 효성에 감동된 소치라 하였다. 드디어 돌아가심에 통곡하고 뛰면서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니 조문(弔問)하는 이들이 차마 보지 못하였다. 26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슬픔을 다하곤 예제(禮制)를 쫓아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집이매우 가난하였으나 오직 직분을 다하는데 힘쓰고 또 의리(義理)가 투철하여 남의 환난(患難)을 보면 급히 생각하고 자신의 노고는 돌아보지 않았다 입지(立志)가 굳고 처사(處事)가 분명하여 행사가 민첩하였으며 더우기 예설(禮說)에 밝아 집상자(執喪者)가 와서 물으면 조목 조목 뜻을 해석하여 가르침이 명확하였다. 이밖에도 친척간에 돈독하는 정의와 자신의 몸 가짐 등을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여 마지 않았다. 현와 고광선(弦窩 高光善)이 공의 행장을 지었다. 배위 시산허씨(詩山許氏)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어 장자는 경규(景奎)요, 2자 광규(光奎)는 생정 종숙(生庭 從叔) 환동(煥東) 후로 출계하고, 3자 학규(學奎)는 역시 생정 종숙 환근(煥根) 후로 출계하였으며, 따님은 연안김기수(延安金麒秀) ․ 해미곽환익(海美郭煥翊)에게 출가하였다.

자손은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潭繼郡 昌平面 維谷型)에 세거하고 있다.

※ 丙寅譜.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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