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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조씨(趙氏)
 

조 씨 趙  氏

 

<조씨 : 1848~1890 : 高宗朝 烈婦 大丞公 28世 : 檢漢城公派>

 

조씨(趙氏)는 관향(貫鄕)이 김제(金堤)로 부는 진묵(鎭黙)이요, 조는 장신(章臣)이요, 증조는 우성(羽成)이요, 문양공 간(文良公 簡)의 후손인데, 류문(柳門)으로 출가하여 죽계 인홍(竹溪 仁洪)의 후예로 위원(渭源)의 3자 예근(禮根)의 배위가 되었다.

헌종(憲宗) 14년 戊申 4월 26일생인데 어려서부터 현원(賢媛)의 자품이 있더니 14세에 시집을 와서 석달이 못되어 부군께서 우연히 기질(奇疫)을 얻어 백약이 효험이 없고 드디어 운명하기에 이르렀다. 부인이 하늘에 빌어 자신을 대신해 줄것을 간절히 원하고 분뇨(糞尿)를 맛보아 증세를 징험하여 손가락을 깨어 피를 흘려 입에 넣어 드리니 조금 후에 호흡을 통하고 눈을 떠서 손을 어루만지다가 돌아가셨다.

이에 즉시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문내에서 강경히 말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3년의 복제(服制)를 고례(古禮)에 쫓아 행하였다. 한편 정절(貞節)을 굳이 지키고 방직(紡織)을 근검히 하며 묘지를 사서 장례를 모신후, 구고(舅姑)를 효성으로 섬기고, 조카 흥철(興激)을 맞아 계자를 삼았다.

도내에서 부인의 열행(烈行)을 천거하고, 사실이 읍지(邑誌)에 실리었다.

고종(高宗) 27년 庚寅 윤 2월 26일 졸하니 겨우43세였다. 묘소는 김제군 공덕면 존걸리 후록 수천동 건좌(金堤郡 孔德面 存傑里 後麓 水泉洞 榮坐)에 모셔졌다.

자손은 공덕면 황산리(孔德面 黃山里)에 살고 있다.

※ 邑誌, 丙寅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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