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파 일 1  233_2.jpg (38.5 KB) Download : 3
  파 일 2  234_1.jpg (34.0 KB) Download : 4
  제    목  류경렬(柳敬烈)



류경렬 柳 敬 烈

<류 경 렬, 字 : 文一, 號 : 樵隱, 1910.2.11 漢學者, 時調人, 成均館典學, 忠景公派, 大丞公 32世,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차항리>

회양부사(淮陽府使) 혜(繐)의 2자 흥손(興孫)의 후예로 하영(夏永)의 손자요, 인찬(寅燦)의 2남 중 장남으로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차항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강릉함씨(江陵咸氏) 철수(哲秀)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재화영민(才華潁敏)하여 학업에 각근(恪勤)하고 행의(行意)가 돈독하였으며, 성장함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노부모의 지체(志體)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한학을 수업하여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일찌기 유학자(儒學者)로서 향인(鄕人)들에게 유도(儒道)정신을 일깨우는 한편, 남달리 항일(抗日) 애족사상이 투철하여 왜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의복과 두발(頭髮)과 언어와 예의(禮儀)를 옛 풍속을 쫒아 행하다가, 끝내 저들의 학정(虐政)이 극악해짐을 보고 제씨 명렬(明烈)과 함께 심산유곡으로 잠입 은거하니 향인(鄕人)이 그 지조(志操)에 감복치 않는 자가 없었다.

8 ․ 15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에 돌아와 서숙(書塾)을 차려 후학을 교도하다가 1972년 평창향교(平昌鄕校) 장의(掌議)에 선임되어 유도정신(儒道精神)을 선양(害場)하고 고유미속(古有美俗) 교화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던바 유림(儒林)의 천거로 1986년 12월 성균관전학(成均館典學)에 선임되었다.

특히 시조창(時調唱)에 뛰어나 여러번 전국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향토문화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다.

부인은 안동김씨 철묵(哲黙)의 따님이요, 슬하에 1남 6녀를 두니 아들 재춘(在春)은 한학자(漢學者)로서 문화류씨대종회 편수위원이요 자부 경주이씨는 사회사업가로 새마을훈장과 강원도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딸은 경주김씨 창봉(昌鳳), 강능최씨 승운(乘運), 금녕김씨 형시(炯時), 신안주씨 형중(亨中), 밀양박씨 병승(炳昇)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Next   류채춘(柳在春) 편집인
Prev   류인봉(柳寅鳳)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