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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한우(柳漢禹)
 

류 한 우 柳  漢  禹

 

<류한우 : 1826~1893 : 高宗朝 行誼 犬丞公 32世 : 祇候使公派>

 

자 덕표(德杓).

석헌 옥(石軒 沃)의 14대손이요, 수초당 현(邃商堂 俔)의 9대손이요, 정현(鼎鉉)의 장자로 순조(純祖) 26년 丙戌 3월 28일 창평 유곡(晶平 維谷)에서 태어났다.

기품이 장중하고 효성과 우애가 남달리 지극하였는데 집이 가난하여 공양(供養)이 어려움으로 낮으로는 밭갈고 밤에는 글을 읽어 봉양에 지성을 다하는 한편 세간의 명 리(名利)와 성색(聲色)에는 담박하였다.

평소에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항상 자질들을 경계하여 이르기를 『말할때는 행실을 돌아보고, 행동할때는 말을 돌아보는 것으로 일신의 신조(信條)를 삼으라』하였다.

일찍 친환을 시병(侍病)하기 10여년을 의약(醫藥) 이외엔 한 걸음도 집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같이 땀에 저린 옷과 똥이 묻은 치마를 몸소 빨되 노복(奴僕)을 시키지 않았으며, 드디어 돌아가심에 예에 쫒아 어김이 없었고 복을 마친 후에도 종신토록 사모(思慕)하여 가히 증자(曾子)의 유모지성(孺慕之誠)과 같았다. 한편 형제 3인이 우애가 지극히 독실하여 혹 술이 있으면 서로 권하여 화기가 충만하였다.

고종 30년 巳 10월 1일 졸하니 향년 68세였다.

배위 양천허씨(煬川許氏)는 겸(締)의 따님으로 2남 3녀를 두었다.

묘소는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좌록 계좌(澤暘郡 古西面 院江里 左麓 癸坐)에 쌍분으로 모셨으며 술암 송재성(述庵 宋在晟)이 묘표를 지었다.

아들은 창수(昌秀)와 선수(璉秀)요, 따님은 금성오한선(錦城吳翰善) ․ 연일정조원(延日鄭視源) ․함평이승서(咸平李承諸)에게 출가하였다.

자손은 창평면 유곡리(昌平面 維谷里)에 세거하고 하였다.

※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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