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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근승(柳根承)


류근승
柳 根 承

<류근승. 字 : 大 中, 號 : 柳 下 : 1893~1950, 儒學者, 忠景公派 : 大丞公 31世,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

판윤공 경생(判尹公 京生)의 장자 송화현감 찬(松禾縣監 纘)의 후예로 무과 정섭(武科 正燮)의 손자요, 영영(永榮)의 아들로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경주정씨 사과 성교(司果 聖敎)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명하고 관후(寬厚)하더니 장성함에 향리의 장덕(長德)을 쫒아 수업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당시 석학(碩學)인 동강 김영한(東江 金甯漢) 선생을 사사(師事),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경사(經吏)는 물론 백가제서(百家諸書)를 두루 통달하니 선생께서 칭찬하여 이르기를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하시고 권면(勸勉) 하시었다.

일제 침략으로 말미암아 국운이 상설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우국(憂國)의 일념으로 정사(精舍)를 건립, 일신서당『日新書堂』이라 현액(懸額)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시었다. 특히 배우고자 하나 가세가 빈곤하여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친히 숙식을 제공하고 열심히 보살피니, 원근에서 학도들이 운집, 정사(精舍) 수용(收容)이 어려울 정도였다. 공께서 재능에 따라 순순이 교도하여 마침내 문인(門人)으로서 후일에 국가에 공헌한 인물이 많았다.

공께서 시문(詩文)에 능하여 향중 사우(鄕中 士友)로 더불어 창수(唱酬)함이 많았는데 특히 우정 이규채(宇精 李圭彩) ․ 춘강 이희종(春同 李喜鍾)과 가장 절친하였으며, 창수록(唱酬錄)이 전하고 공의 유고(遺稿) 1권이 집에 소장(所藏)되어 있다.

1950년 9월 19일에 향년 58세로 별세하니 묘소는 금현리 선영하 손좌(金峴里 先榮下 巽坐)에 모시었다.

배위 강릉최씨(江陵崔氏)는 참봉(參奉) 돈우(燉禹)의 따님인데 순종 3년(1909) 3월1일 초산(初産)의 아들을 낳고 산고(産苦)로 별세하였으며, 밀양손씨(密陽孫氏)는 명순(明順)의 따님으로 4남을 두었는데 부덕(婦德)을 갖추어 여중군자『女中君子』라 일컫었다.

1964년 정월 25일 별세 하시니 향년 71세었다. 모두 공의 묘소에 합부하여 석의(石儀)를 갖추었다.

5남을 두니 선열(璿烈) ․ 기열(璣烈) ․ 용환(龍煥) ․ 구환(龜煥) ․ 홍환(鴻煥)이요, 후손이 금현리에 세거(世居)하고 있다.

※ 漁樵唱酬錄, 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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