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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근오(柳根五)


류근오 柳 根 五

<류근오, 號 : 友峴 : 1919~1976, 漢文修學, 友峴農場主, 車柳大宗會, 大丞獎學會副會長, 忠景公派 大丞公 314世>

송화현감 찬(松禾縣監 纘)의 후예로 무과 정섭(武科 正燮)의 손이요, 영석(永碩)의 5남 3녀 중 5남으로 포천 가산면 금현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6세에 모친을 여의고 20세에 부친을 여의었다. 당시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지재(持齋) 이선생에게 한학과 서예를 수업하다가 가세가 빈한하여 17세에 강인한 뜻을 세워 단신으로 상경, 온갖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인내와 근검으로 노력한 결과 일제치하의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불과 7 ․ 8년사이에 이미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였다.

26세에 풍산 심씨(沈氏) 혁근(赫根)의 따님과 결혼하고 더욱 근검 절약하여 경제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항상 불우했던 소년시절을 회고하여 자가안일에 그치지 아니하고, 또한 국가의 농업정책에 호응하여 솔선 향리로 돌아와 우현농장(友峴農場)을 개척하였다.

“하면 된다.”는 강인한 의지는 향민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더욱이 많은 노임을 살포하여 그들에게 근로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육영사업에도 남달라 투철하여 1975년, 포천 유지들과 포천 장학회를 조직하이 많은 기금 조성과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1976년 대승장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된후 차 ․ 류문중의 영재교육에 적극 후원하였다.

같은 해 차류대종회 중앙총본부부회장으로 선출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평소에 조실부모로 효도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조상 선영에 석물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

일평생을 사회의 공익과 숭조돈종(崇禮敦宗)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니 행적마다 빛이 있고. 말없는 가운데에서 실천하니 향리에서나 종친계에서 선도자라 칭하였다.

1976년 8월9일 58세를 1기로 운명하니 포천 가산면 우금리 고비현(高飛峴) 선영하에 장사하였다.

배위 풍산심씨(豐山沈氏)는 명문 출신으로 일찌기 천부의 성품이 순후하고 영오(穎悟)하여 어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모든 예절을 바르게 행하니 향노(鄕老)들이 특이하게 여겼다.

장성하여 류문(柳門)으로 출가한 후로는 부군을 공경으로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니 규문(閨門)의 예(禮)가 있었고 또한 부군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 성공케 하니 그 공이 현저하였다.

56세에 부군을 여이고 어린 아들과 딸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켜 성혼(成婚)시키고 아들의 생활기반을 세워주었다.

슬하에 2남4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하환(夏煥)이요, 2남은 은환(殷煥)이요, 장녀는 남궁명(南宮

洺)에게, 차녀는 정성균(鄭成均)에게, 3녀는 한기열(韓基烈)에게, 4녀는 박영수(朴榮洙)에게 각기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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