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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성추(柳 星 樞 )
 

류 성 추 柳  星  樞

 

<류성추 : 1759~1815 : 純祖朝 生員 大丞公 26世 : 夏亭公派>

 

자 건경(建卿)

거창현감 용공(居昌縣監 用恭)의 8대손이요. 통덕랑 태현(通德郞 台顯)의 2자로 영조(英祖) 35년 己卯 3월18일 고부 달천(古阜 達川)에서 태어났다.

송당 송환기(性潭 宋煥箕)의 문하에 수업, 경학(經學)을 탐구하고 조예(造詣)가 깊어 질의(質疑)와 논변(論辯)의 왕복 서한(書翰)이 많았으므로 선생께서 크게 기대하고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칭찬하였다. 순조(純祖) 7년 丁卯(1807) 3월, 49세로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니 이로부터 명성이 더욱 드러났었다.

천성이 효우(孝友)하여 그 어버이 곁에 있음에 화락한 기색으로 뜻을 순종하여 지체(志體)의 봉양을 다하고 거처를 살펴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음식공봉에 지성을 다하였다. 친환(親患)이 계심에 항상 근심스런 낯빛으로 관대(霧帶)를 벗지 않고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몸소 탕약(湯藥)을 시중하고 그 위중함에 미쳐 분뇨(糞尿)의 달고 쓴 맛을 보며 한편 손가락을 찢어 피를 흘려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여 몸이 쇠약함에 이르렀고, 송종(送終)의 절차를 예법(禮法)에 어김이 없을 뿐 아니라 제전(祭奠)의 받듬을 성의를 다하여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이로서 고을에서 그 효행과 학문을 감영(監營)에 천거, 표창을 청하였다 .

15년 乙亥 8월19일 향년 57세로 졸하니 금제 후록 응봉(黔堤 後麓 朧峰)아래 손좌(巽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부령김씨(扶寧金氏)는 덕후(德垕)의 따님이요, 고부이씨(古阜李氏)는 익덕(益德)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두어 아들은 학영(學榮)과 규영(圭榮)이요, 따님은 창원 정택하(昌原 丁宅夏)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정읍군 덕천면 달천리(井邑郡 德川面 達川里)에 세거하고 있다.

※ 瀛州三綱孝行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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