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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석웅(柳錫雄)
 

류 석 웅 柳  錫  雄

 

<류석웅 : 1845~1927 : 高宗朝 行誼 大丞公 28世 : 夏亭公派>

 

자 영집(永執). 호 죽헌(竹軒)

영암군수 희정(靈岩郡守 希汀)의 11대손이요, 분와 공인(汾窩 公仁)의 8대손이요, 채규(采達)의 장자로 헌종(憲宗) 11년 乙巳 5월 14일 나주 모산(羅州 茅山)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내행이 순독(純篤)하여 사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임사(臨事)에 이해를 헤아리지 않으며 오직 사리(事理)에 맞도록 처리하였다.

만년에 향약장(鄕約長)으로서 고을 사람들과 함께 강회(講會)를 열고 향약(鄕約)을 권장하니 원근(遠近)에서 많이 보고 감동하였다.

丁卯 6월 1일 졸하니 향년 83세였다.

배위 해주최씨(海州崔氏)는 문과(文科)로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을 지낸 전(㙉)의 따님으로 헌종(憲宗) 辛丑(1841) 정월 22일 생인데 부덕(婦德)을 심히 갖추어 구고(舅姑)를 섬김에 지성으로 공양(供養)하고, 무릇 제사에 애경(哀敬)의 성의를 다하며, 치가(治家)에 법도가 있으므로 비록 노복(奴僕)들도 그 은혜를 모두 감복하였다. 일찍 자손들을 경계하여 이르기를 『내가 성인(聖人)의 교훈을 듣건대 부모가 비록 자애 (慈愛)롭지 않더라도 자식은 불효해선 안된다. 유독 자식이 되어서만이 아니고 무릇 일가 친척 및 타인에까지 다 그렇게 해야 한다. 남의잘못을 비교하지 말고 먼저 나의 도리를 다함이 옳으니 너희들은 명심하여 가정에서부터 행할것 같으면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리라.』하시었다. 고종(高宗) 41년 甲辰(1904) 11월 26일 졸하니 향년 64세였다.

묘소는 분수동 선영(汾水洞 先塋) 아래에 합폄하였다.

1남 1녀를 두어 아들은 흥인(興仁)이요, 따님은 거창신경성(居昌愼敬晟)에게 출가하였다.

자손들이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靈岩郡 新北面 茅山里)에서 세거하고 있다.

※ 丙寅譜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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