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류백균(柳百菌)
 

류 백 균  柳百均

 

<류백균 : 1756~1808 : 純祖朝 學行 大丞公 28世 : 左相公派>

자 사통(士統).

문성군 수(文城君 洙)의 13대손이요, 황해도관찰사 경집(黃海道觀察使 景緖)의 6대손이요, 환명(晩明)의

아들로 영조(英祖) 32년 丙子 10월 25일생인데 정훈(庭訓)을 독실히 익히고 경전(經濤)의 의리를 깊이 탐구하여 학문으로 세상에 이름이 떨치었다. 한편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섬김에 시종 여일하였고, 정조(正祖) 원년 丁酉(1777)에 부친상을, 3년 己亥(1779)에 모친상을 당하여 가례(家禮)를 쫓아 상기(喪期)를 마치고 그로부터 벼슬에 뜻을 끊고 시골에 자취를 감추어 시주(詩酒)로 스스로를 즐기었다. 순조(純祖) 8년 戊辰 8월 3일 졸하니 겨우 53세로 광주군 퇴촌면 능곡 선영 자좌(廣州郡 過村面 陵谷 先塋 子坐)에 묻히셨다. 유고(遺稿)가 전한다.

배위 전의이씨(全義李氏)는 경회(綱晦)의 따님인데 무후하고, 충주지씨(忠州池氏)는 원형(遠亨)의 따님으로 3남 1녀를 두어 아들은 흥일(興一) . 흥삼(興三) . 흥오(興五)요, 따님은 고령신구영(高靈申久榮)에게 출가하였다.

장자 흥일은 천성이 순수하고 재예가 총명하여 경서(經書)는 물론 천문 서산(天文 書算)에 이르기까지 능통하더니 6순이 넘어서도 논어(論語) ․ 맹자(孟子)등의 책을 밤낮으로 읽어 그치지 않았다. 집이 본래 가난하였으나 어버이 뜻을 순종하여 어김이 없었고, 전후로 친상(親喪)을 당하여 슬픔으로 3년을 마쳤으며, 매양 기일을 당하면 지성을 다하여 생존해 계시는 것처럼 행하였다. 한편 두 아우로 더불어 한집에 동거하면서 30여년을 하루같이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 공의 유고(遺稿)가 있으며 장례원경 이기호(掌祭院卿 李起鎬)가 묘지명을 지어 칭찬하였다.

자손이 파주군 교하면 동패리(坡州郡 交河面 東牌里) ․ 광탄면 창만리(廣灘面 倉滿里)에 세거하였다.

※ 甲子譜, 左相公派譜.

 

 


 
       

Next   류경원(柳敬源) 편집인
Prev   류성균(柳性均)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