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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운(柳 運 )
 

류 운 柳  運

 

<류 운 : 1580~1643 : 仁祖朝 處士 大丞公 23世 : 忠景公派>

 

자 건숙(建叔). 호 화설당(花雪堂)

종부시소윤 한생(宗濤寺少尹 漢生)의 8대손이요, 진암현감 여강(鎭安縣濫 如岡)의 증손이요, 주부 자(主簿  慈)의 손이요 군자감첨정 수경(軍資監僉正 守敬)의 아들로 선조(宣祖) 13년 庚辰에 무안 청계(務者 淸溪)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여 유희(遊戱)를 즐기지 않고 항상 어버이 곁에서 글을 읽어 쇄소 응대(灑掃應對)의 절차를 능히 행하고 약관(弱冠)에 경사(經史)를 두루 통달하여 명성이 멀리 떨치었다.

선조(宣祖) 21년 壬辰(1592)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부친께서 창의(倡義)에 참가, 가사를 부탁함에, 공께서 모친을 모시고 흑산도(黑山島)로 들어가 난리를 피하면서 봉양에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8년을 하루같이 모시었다. 난리가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전후로 친상(親喪)을 당하여 장제(葬祭)를 한결 예제(禮制)에  쫓아 행하고 슬픔이 지나쳐 본성(本性)을 잃기에 이르렀다. 더우기 제사에 성의를 다하여 새벽에 반드시 사당(祠堂)을 배알하고, 목욕 재계한후 제수(祭需)를 몸소 간검하고 정결하게 갖추어 행하되 종신토록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한편 영리(榮利)에 담박하여 시골에 묻혀 고상한 뜻을 지키고 거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서 매화와 연꽃을 심고 그 사이에 시가(詩歌)를 읊으며 사우(士友)로 더불어 종유(從遊)하였다. 특히 남곽 박동열(南郭 朴東說) ․ 수은 강 항(睡隱 姜 沆)이 화설당차운(茫雪堂次韻)을 짓고, 우암 송시열(尤庵 宋詩烈)이 화설당(花雪堂)의 액호(額號)를 썼으며, 시남 유계(市南 兪啓)가 또한 시(詩)를 지어 아름다운 지취를 찬미하였다.

인조(仁祖) 21년 癸未 8월 10일에 향년 64세로 돌아가시니 무안군 청계면 중화리 후록 낙천동 해좌(務安郡 淸溪面 中化里 後麓 樂天洞 亥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해남윤씨(海南尹氏)는 참봉 강중(參奉 剛中)의 따님으로 1남 종석(宗奭)을 두었으나 조사(早死)함으로공의 재종제 정(再從弟 ?)의 3자종 무(宗武)를 맞아 계자(系子)하였다. 후취 인동장씨(後娶 仁同張氏) 충(忠)의 따님과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어 아들은 종립(奈立). 종간(宗侃)이요. 따님은 감사 파평윤명은(監司 坡平尹鳴殷). 금성정시호(錦城鄭時豪) ․ 좌의정 은진송시열(左議政 恩津宋埼烈)의 부실(副室)이다.

공은 천품이 온순하고 문학이 뛰어났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골에서 조용히 세상을 마쳤으므로 당시에 처사(處士)로 일컬었다. 지금도 이곳 청계면 사마리(淸溪面 司馬里)에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花雪堂』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연재 송병션(淵齋 宋秉璿)이공의 묘갈명을 지었다.

※ 墓碣銘.丁巳譜. 甲子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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