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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희현(柳 希 賢)
 

류 희 현 柳  希  賢

 

<류희현 : 1542~ ? 宣祖朝 倡義 大丞公 18世 : 檢漢城公派>

 

자 면이(勉而). 호 성인재(成仁齋)

회인현감 형(懷仁縣監 衛)의 현손이요 영광군수 효장(靈光郡守 孝章)의 증손이요, 홍문관교리 죽제인흥(弘文館校理 竹溪 仁洪)의 손이요, 참봉 사근(參奉 思謹)의 3자로 중종(中宗) 37년 壬寅에 김제 황산(金堤 黃山)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스승을 쫒아 학문과 도의로 몸을 닦고 기절(氣節)과 문장(文章)이 뛰어나더니 명종(明宗) 16년 辛酉(1561)에 생원에 급제하고 선조조(宣視朝)에 음사로 별제(別提)를 지내었다.

任辰(1592) 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 이일(巡邊使李鎰)의 막하(幕下)에 있으면서 상주(尙州)의 전투에 참전 적병과 맞서 3일을 싸우다가 마침내 적탄을 맞고 순절하였다. 공께서 전장에 나갈때 부인 강씨(姜氏)가 집에 있는 노복(奴僕)들을 거느리고 뒤따라 가서 상주(尙州)에 이르러 산위에 움막을 치고 날마다 적진(賊陣)을 염탐하던 중 공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바위 아래로 떨어져 순절하였다.

아들 여굉(汝宏)과 여령(汝寧)이 일시에 부모를 잃고 드디어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日本)으로 들어가 8년을 지내는 동안 끝내 굴복하지 않으니 왜인들이 의리(義理)에 감동하고 돌려 보내 32년 己亥(1599) 7월 환국(還國)하였다.

배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승지 삼(承旨 參)의 손녀요 윤희(胤熙)의 따님인데 2남 1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여굉(汝宏)과 여령(汝寧)이요 사위는 부사 양간(府使 梁諫)이다.

공의 양위(兩位)를 초흔(招魂), 송산 전록 유좌원(松山 前麓 酉坐原)에 장례를 모시고 그후 충신(忠臣). 열녀(烈女). 효자(孝子)의 양세 삼정려(兩世 三旌閭)의 특전이 내려졌다.

공의 재종형 문양군 희림(文陽君 希霖)이 비문을 지었다.

※朝鮮王朝實錄 . 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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