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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충립(柳忠立)


 

上 : 1616년 月沙 李廷龜에 奉呈한 근묵
下 : 임취정.류희량.허균 류충립. 박자흥 등 13인이 수결한 성문
참고 : 이미지 복사를 금함


류충립 柳忠立


류충립(류충립) 1582~1620 중문사공파  대승공 22세

1582년(선조 15)∼1620년(광해 12).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가이(可移)이고, 호는 쌍백(雙栢)이다. 증조부는 공조판서 류잠(柳潛)이며, 조부는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류자신(柳自新)이다. 부친 류희갱(柳希鏗)과 모친 기성군(簊城君) 이현(李俔)의 딸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즉 光海君 妃 柳氏의 조카이다.


일찍이 장유(張維)·이식(李植)·신흠(申欽)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사대가로 일컬어진 대제학과 좌의정을 역임한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문하생이었고,


선조(宣祖) 39년(160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생원진사시 진사 1等 2위로 합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승정원 주서,·겸설서,·정언,·수찬, 서원현감, 이조좌랑, 문학, 사복시정, 응교, 사성, 등을 역임하였고 1619년(광해군 11) 친적도감(親籍都監)의 도청(都廳) 업무를 행하였다. 도체찰사 종사관의 직책을 지내고 (암행)어사가 되어 각 도의 군사들에게 왕의 분부에 따라 격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서쪽 변방의 군무를 살피고 중앙으로 돌아와 동부승지를 지냈다. 후에 약관 37세에 관직이 공조참의,·성균관의 사실상 으뜸 벼슬이었던 대사성에까지 올랐다.


광해 8년(1616 병진) 11월 4일

당시 좌의정 월사 이정구와 공조판서 유간이 주청사로 가게 될 때 류희량,  류충립 등이 잘 갔다가 성공하고 오라는 뜻으로 월사 이정구에 글을 올린 근묵 작품이 현재까지 그대로 전하여 지고 있다. 


柳忠立의 연대별 관직


⇒1611 주서, 겸설서

⇒1612 정언, 수찬

⇒1613 이조좌랑---류충립(柳忠立)을 서원현감(西原縣監)으로【류충립은 여러류씨 중에 인품이 비교적 나은 편으로〈몸가짐이 가장 발랐다.〉

⇒1614 문학

⇒1615 장악정, 보덕

⇒1616 사복시정

⇒1617 응교, 사성

⇒1618 비망기에 "류충립(柳忠立)은 보루도감(報漏都監)의 공역(工役)이 곧 끝난다고 하니 강화시재순검어사(江華試才巡檢御史)로 차송(差送 :임명하여 보냄 )하고 사인, 겸보덕, 관상감이 측후관, 장악원 정 겸 필선, 홍문관 직제학, 도체찰사 종사관인 직제학 류충립(柳忠立)에게  어사라는 칭호 ⇒1619 승지, 대사성, 공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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