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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지용(柳竹奄)


류지용 : 號 竹庵, 1916.6.30, 爲先人, 世道面長, 柳志鎔法律事務所長, 大丞獎學會財務, 忠景公派 : 大丞公 33世,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36-10현대빌라 101호>
은사(隱士) 사은 승열(四隱 承烈)의 3남 2녀중 2남으로 부여군 세도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평택임씨(平澤林氏)기 주사 규현(主事 圭鉉)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자품(資稟)이 영수(英秀)하고 천성(天性)이 효우강직(孝友剛直)하여 매양 부모의 엄훈(嚴訓)에 순종하며 지체(志體)의 봉양(奉養)에 진력하니 그 칭송이 향리(鄕里)에 미쳤다.

일찌기 초등교육을 마치고 독학(獨學)으로 35년 11월 지방행정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충남도청(忠南道廳)등에서 근무하다가 25세에 부인 김성희씨와 결혼하고 8 ․ 15광복(光復)과 더불어 세도면 부면장을 거쳐 면장을 역임한 후 47년부터 세도수리조합 출납역(出納役)으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지역개발과 수리행정(水利行政)에 진력하여 복지농촌건설(福地農村建設)에 공헌(貢獻)하였다.

자녀들이 장성함에 따라 60년 서울로 이주하여 교육에 힘쓰며, 63년 3월 서울 명동에 법률사무소(法律事務所)를 개설하여 25년 동안 서민대중(庶民大衆)의 법률구제(法律救濟)에 최선을 다한바 이로 말미아마 억울한 피해자가 생계(生計)의 기반(基盤)을 회복(回復)한 자 실로 많았다.

더욱이 사건을 처리함에 공정(公正)에 어긋남이 없고 성격이 순박강직(淳朴剛直)하여 말과 실천(實踐)이 함께 결과에 나타나므로 감히 오만(傲慢)한 자라도 그 아조지행(雅操之行)에 감복하지 않은 자 없었다.
항상 친상(親喪)에 종신(終身)치 못함을 평생의 유한(遺恨)으로 여겨 효사(孝思)에 미독(彌篤)하여 스스로 검약(儉約)하며 역대선조 묘역을 치산(治山)하고, 대승장학회 재무(大丞獎學會 財務)로서 현재까지 10여년간 궁족 조휼(窮族 賙恤)사업에 진력하니 종당(宗黨)이 추중(推重)하고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부인은 김해김씨 상배(金海金氏 翔培)의 따님이요,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장남 달선(達善)은 서울 법대(法大)출신으로 회사 간부요, 차남 진선(進善)은 서강대(西江大)출신으로 호주에 거주하고, 딸 재은은 원주 이효철(原州 李孝喆)에게 출가하여 미국에서 거주한다. 손자 제욱(濟旭)은 달선(達善)의 소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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