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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명선(柳明先)



류명선 柳 明 先

<류명선 : 1921.10.17. 孝婦, 忠景公派 大丞公 33世, 충북 청원군 오창면 주성리>

회양부사(淮陽府使) 혜(繐)의 후예로, 인섭(寅燮)의 손녀요, 성렬(聖烈)의 장녀로 청주시 강서동 휴암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전주이씨 범주(範周)의 따님이다.

일찌기 어려서부터 부친의 엄격한 교훈을 받고 자라나 규범(鬪範)을 쫒아 어긋남이 없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안동김씨 문희(文會)의 장남 태로(泰魯)와 결혼하였는데 시아버지가 소실과 별거하므로 가정불화가 연속되고 있었으나, 이를 원망치 아니 하고 더욱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며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한 바 며느님의 효행에 감동되어 소실을 멀리하기에 이르렀다.

일제치하에 부군이 강제 동원되어 몸소 농사를 돌보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시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6년간을 하루같이 손수 분뇨를 수말하며 시탕(侍湯)을 정성껏 다하고 별세하시매 성묘애곡(肖墓哀哭)하며 3년 상을 마치었다.

그후 편시모에게 더욱 효성을 바쳐 모시던 중 어느날 갑자기 중풍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3년 6개월간을 시아버지 간호하듯 하였다.

이와같이 젊은 세월을 항상 그늘 속에 편안한때 없이 넉넉치 못한 가정을 꾸려가며 모진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 이를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감내하였다.

매년 시부모의 제사를 마치고 나면 동네 노인을 모셔다가 친 부모처럼 대접하고, 형제간에 화목을 위주하며 자녀를 훌륭하게 출세시키니 인근에서 류씨부인을 “효부중의 효부”라 칭송하고, 안동김씨종친회 및 청주향교(淸州鄕校)에서 이를 찬양하여 효부표창을 수여하였다.

슬하에 2남 6녀를 두니 아들 김홍식은 중등교사요, 김호식은 서울 회사 중역이며, 딸들은 모두 명문가에 출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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