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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충건(柳 忠 健 )
 

류 충 건 柳  忠  健

 

<류충건 : 1574~1609 : 宣祖朝 孝行. 大丞公 21世 : 夏亭公派>

 

자 자강(子强). 호 낙봉(樂峰)

학암 몽정(鶴巖 夢鼎)의 손이요. 침溪당 영(枕溪堂 泳)의 장자로 선조(宣祖) 7년 甲戌 8월5일 충주 노은(忠州 老隱)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자식된 도리를 알아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거처를 보살피고 안부를 묻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버이께서 혹 병환이 계시면 울부짖고 뛰며 어쩔바를 모르니 이웃에서 모두 감탄하였다.

일찌기 우계 성 혼(牛溪 成 渾) 선생을 쫓아 학문을 익히더니 39년 丙午(1606)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음사(蔭仕)로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지내었다.

나이 36세 되던 광해군(光海君)원년 己酉 3월 모친께서 돌아가셨는데 죽을 먹으며 여막(來幕)에서 조석으로 묘소에 곡배(哭拜)하되 풍우(風雨)와 한서(寒暑)에도 폐하지 않았다. 그로서 병을 얻었지만 오히려 질대 (絰帶)를 풀지 않으므로 가인(家人)이 염려하여 약물(藥物)에 생강(生薑)과 계피(桂皮)등을 넣어 권하므로 공께서 절대 거절하고 입에 대지 않더니 그로부터 몇달 후 여막(來幕)에서 돌아가시니 즉 동년 9월 26일 이었다. 원근(遠近)에서 듣는 이마다 슬퍼하지 않음이 없었다.

배위 창녕성씨(昌寧成氏)는 현감 격(縣監 格)의 따님으로 무후하고, 완산최씨(完山崔氏)는 정랑 철강(正郞 鐵强)의 따님으로 1남 1녀를 두어 아들은 시량(時亮)이요, 사위는 군수 덕수이조(郡守 德水李稠)이다.

묘소는 충주 노은 고곡선영 북록 곤좌(忠州 老隱羔谷 先塋 北麓 坤坐)에 모시었다.

아들 시량(時亮)역시 효성이 출중하더니 10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애척(哀戚)한 태도와 궤전(饋奠)의 예절을 한결 성인(成人)과 같이 행하고 모친을 봉양함에 더욱 그 성의를 다하여 평생을 하루 같이하였다. 모친께서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하늘에 빌고 분뇨(糞尿)를 맛보는 등 간호에 정성을 다하고 급기야 돌아가시기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드려 6년의 명을 연장하였다. 한편 손위의 누이와 더불어 우애가 지극히 돈독하였고, 그 생질(甥姪)들을 거두어 아들같이 대하니, 보고 듣는 이 마다 모두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그 아들 송제(松齋)가 또한 부조(父視)의 행실을 익히어 착하기 그지없더니 일찍이 그 부친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입술이 부르트고 종창이 나기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그치지 않았다.

현종(顯宗) 7년 丙午(1666) 4월 주상(主上)께서 온양(溫陽)에 행차하셨는데 이때 유생(儒生) 신희대(辛喜大)등이 공의 효행(孝行)을 주달(奏達)하여 정려(旌閭)의 특명과 아울러 호조정랑(戶曹正郎)의 증직(贈職)이 내렸다. 얼마 후 아들 시량(時亮) 역시 효행으로 천거되어 정려(旌閭)와 아울러 광흥창수(廣興倉守)에 증직되었고, 숙종조(肅宗朝)에 손자 송계(松齋)에게도 도승지(都承旨)의 증직과 아울러 정려(旌閭)의 특전이 내렸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삼세효행전(三世孝行傅)을 지었다.

※ 人物考. 尤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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