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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덕용(柳 雲)

 

류 덕 용柳  雲  

<류덕용 : 1536~1628 : 宣祖朝 孝行 大丞公 18世 : 檢漢城公派>

 

자 중부(仲符), 호 열역재(悅易齋).

양근군사 선(楊根郡事 善)의 현손이요 양덕현감 수언(陽德縣監 秀漹)의 계자(系子)이다. 생부(生父)는 회인현감 형(懷仁縣監 衡)의 증손인 생원 문옥(生員 文沃流)이다.

중종(中宗) 31년 丙申에 김제 황산(金堤 黃山)에서 태어났는데 일찌기 과업(科業)을 폐하고 문에 전력, 경지(經旨)를 깊이 궁구하였다.

천성이 지성스러워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더니 친환(親患)이 위중함을 당하여 백약(百藥)이 무효하므로 어쩔바를 모르던 차 의원(醫員)의 말이『연꽃을 분말하여 약에 타서 마시도록 하면 좋으리라』하였다. 때가 겨울이 되어 연꽃을 구할 수가 없으므로 울면서 방황하는데 난데없이 연꽃 두송이가 얼음 속에서 나오는지라 드디어 시용(試用)하여 병이 쾌차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난하여 전주 서문(全州 西門)밖에 우거하다가 김제 백구정(金堤 白鷗亭)으로 옮겼더니 난리가 끝난 후 화순(和順)으로 이거하여 경적(經籍)을 즐겨 읽고 특히 주역(周易)에 전심하여 전인(前人)이 깨닫지 못한 것을 천발(闡發)하고, 열역재(悅易齋)라 자호(自號)하고 여생(餘生)을 마쳤다.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의 가자(加資)가 내렸다.

 

인조(仁祖) 6년 戊辰 7월 28일에 졸하니 향년 93세로 화순 흑토치 해좌(和順 黑土峙 亥坐)에 안장되었다.

효행으로 정려(旌閭)의 은전과 아울러 병조참의(兵曹參議)의 증직이 내리고 후에 화순 언동사(彦洞祠)에 향사 되었다.

배위 안동김씨(安東金氏)는 현감 이(縣監 洢)의 따님으로 3남 6녀를 두었으니 홍(泓) ․ 제(濟) ․ 함(涵)과, 참봉 박사건(參奉 朴士健) ․ 교위 청주한효삼(校尉 淸州韓孝參) ․ 청주한효연(淸州韓孝淵) ․ 이덕무(李德懋) ․ 김시성(金時省) ․ 해주최서생(海州崔瑞生)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장자 홍(泓)은 임진왜란에 백의(白衣)로 종군(從軍)하여 평양(平壤)에서 순절(殉節)하니 그 곳에 사당(祠堂)을 세우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 되었다고 전한다.

3자 함(涵)은 호 백천(百泉)인데 학행(學行)이 있어 화순 언동사(和順 彦洞祠)에서 향사(享祀)하고 있다.

계녀(季女) 최서생(崔瑞生)의 부인은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왜적에게 붙잡히자 사진포(沙津浦)에서 몸을 던져 순절(殉節)하니 열행(烈行)으로 정려(旌閭)의 특전(特典)이 내리었다.

공의 후손은 가평군 하면 신상리(加平郡 下面 新上里). 화순군 동면 언도리(和順郡 東面 彦道里)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墓碣銘 . 家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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