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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석월(柳石越)



류석월 柳 石 越

<류석월 : 譜名 夏永, 1902.8.26~1978.12.10, 孝子, 忠景公派 : 大丞公 30世, 경남 남해군 이동면 초음리>

합천군수 윤(陜川郡守 綸)의 후예로 길로(吉老)의 손이요, 상순(相洵)의 장자로 경남 남해군 이동면 초음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때 초음서당(草陰書堂)에서 잠시공부를 하다가 가세가 빈곤하여 중단하고 가사를 돕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일찌기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것을 통감하여 농토를 확장하면서 자녀들을 어려운 중에서도 대학교까지 모두 교육을 시켰다.

천성이 온후 강직하고 성실 근면하였으며 유교사상을 중히 여겼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였던 1940년경 가뭄으로 몇 년 동안 흉년이 들어 어려운속에서 가족들은 잡곡밥이나 죽으로 끼니를 이어가면서도 부모님께는 밥을 지어드리고 부모님을 받들매 효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또한 형제간에도 우애가 신독(愼篤)하였으므로 이웃이나 원근 친척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1950년 11월 26일, 6.25때 당년49세로 부친이 별세하자 애훼유제(哀毁踰制)하고 부친의 묘소를 길에서 가까운 곳에 안장하고 평생토록 부친의 묘소 부근을 왕래할 때에는 아무리 바쁘거나 또 무거운 등짐을 지고 가다가도 반드시 짐을 내려놓고 성묘하고 지나갔다.

또한 편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1960년 12월 향당(鄕黨)으로부터 효자상을 받었고, 그 칭송이 고을에 널리 퍼지자 1964년 10월 남해군수(박희수)로 부터 또 효자상을 받었다.

한편 부인 이씨(李愛琪 : 1909.2.28생)는 성품이 온후하고 근면성실하며 자애롭고 자상한 부덕을 고루 갖춘 분이였다.

가정생활 교육에서는 선현들의 유풍(遺風)을 본받아 모든 예의법절이 도의에 어긋나면 행하지를 못하게 하고 몸소 60년 동안 노(老)시어머니를 공손히 봉양하여 1983년5월 19일 다초지구(茶草地區) 노인회장(김석보)으로 부터 효부상을 받은 바 있다.

시어머니를 몸소 60년간이나 모시게 된 것은 시어머니가 손자의 직장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농촌의 옛집에서 살겠다는 뜻을 존중하였기 때문이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니 귀주(貴柱), 담(淡), 효동(孝東)이요, 딸은 정자(貞子)이다.

손자는 자춘(自春), 영춘(英春), 성렬(誠烈), 성룡(成龍), 원석(沅析), 기석(沂析), 손녀는 영숙(英淑), 영덕(英德), 성희(成姬)이고, 증손은 동옥(東沃), 경림(炅林), 경곤(庚坤), 옥엽(沃曄)이다.

묘소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 초음리 용두산(南海郡 二東面 草陰里 龍頭山)선영하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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