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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성화(柳 聖 和 )
 

류 성 화 柳  聖  和

 

<류성화 : 1678~1713 : 肅宗朝 行誼 大丞公 26世 : 祗候使公派>

 

자 사백(師伯).호 매헌(梅軒).

석헌 옥(石軒 沃)의 8대손이요, 춘수(春壽)의 장자로 숙종(肅宗) 4년 戊午생인데 백부 통덕랑 춘원(通德郎 春遠) 후로 출계하였다.

양정모친(養庭母親) 전의이씨(全義李氏)는 사헌부집의 학포 항(司憲府孰義 學圃 抗)의 따님으로 규범(閨範)이 훌륭하였는데 공의 인품을 보고 매우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공께서 관례(冠禮)를 마친 후 모친의 명(命)으로 외숙 이공정하(外叔 李公鼎夏)를 찾아가 뵈었는데 이공(李公)이 이르기를 『내가 경도(京都)에 명가의 자제를 다 보았으나 빙옥(氷玉)같은 자질이 그대처럼 뛰어난 이는 보지 못하였다』하고 공의 모친께 서한을 띄어 하례하여 이르기를 『이제 생질(甥姪)아이를 보니 명양(鳴陽 : 昌平)의 산수가 청수기절(淸秀奇絶)함이 얼마나 좋아서 능히 이같은 인걸(人傑)이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생정(生庭)의 친상(親喪)을 당하여 최질(衰經)을 벗지 않고 비린내 나는 것을 먹지 않으며 예도(禮度)로써 집상(執喪)하니 계모(繼母)께서 그 몸이 너무 쇠약함을 염려하여 울면서 제전(祭奠)의 육집(肉什)을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먹지 않았다. 그리고 생정외가(生讓外家)에서 얻은 전답을 계모에게 아뢰고 다  주어버렸다.

오공대제(吳公大濟)에게 취학, 주야로 강마(講磨)하여 식견(識見)이 고명하고 언론(言論)이 정대함으로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여 마지 않았다.

숙종(肅宗) 38년 壬辰(1712)에 모부인 이씨(李氏)를 모시고 한양(漢陽)에 이거하여 이듬해 癸巳 4월30일 경제 京第)에서 졸하니 향년 36세였다.

배위 죽산안씨(竹山安氏)는 두상(斗相)의 따님인데 1남 2녀를 두고 졸하니 담양군 창평면 반룡산 외록 묘좌(漂陽君 昌平面 盤龍山 外麓 卯坐)에 공과 함께 합부하였다.

아들 진태(震泰)는 호 불기재 不欺齋)로 학행(學行)이 뛰어나 유집(遺集)이 전하고, 따님은 연안이응술(延安李應述). 나주임관헌(羅州林觀憲)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에 세거하고 있다

※ 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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