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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한태(柳漢泰)
 

류 한 태 柳  漢  泰

 

<류한태 : 1756~1775 : 純祖朝 孝子. 大丞公 27世 : 貞肅公派>

 

자 익지(益之).

황해도관찰사 장(黃海適觀察使 章)의 13대손이요, 민후(敏垕)의 차자로 영조(英祖) 32년 丙子 6월 11일 옥천(沃川)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노모께서 방적(紡績)에 근로하심을 보고문득 울음을 그치고, 나이 13세에 낮에는 땔감을 해오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일찍 산방(山房)에 가서 공부하다가 열흘이 못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그 형 한복(漢復)이 꾸짖거늘 문득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대답하기를 『감히 태만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어머님을 뵙지 못하니 마음이 어지러워 능히 독서에 뜻을 부치지 못하겠읍니다. 』하고 다시 모친 결을 떠나지 않았다. 일찍 침질(沆疾)로 고생하더니 임종(臨終)에 그 부인을 불러 이르기를 『지성으로 어머니를 받들진대 죽어도 가히 눈을 감겠다. 』하고 말이 끝나면서 돌아가시니 때에 공의 나이 겨우 20세로 영조(英祖) 51년 乙未 8월 17일이었다.

철종(哲宗) 13년 壬戌(1862)에 효행천(孝行薦)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고종(高宗) 18년 辛巳(1881)에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되었다.

배위 현풍곽씨(玄鳳郭氏)는 수곤(守坤)의 따님인데 부군의 유언을 돌이켜 명심하고, 효성을 갑절 더하여 평생에 이를 내어 웃지 않고 좋은 반찬을 먹지 않았으며 조카 최영(最榮)을 맞아 계자를 삼았다.

임종에 여러 손자들을 불러 말씀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산것은 오직 너의 조부의 임종의 부탁에 의한것이다. 』 하고 향년 67세로 순조(純祖) 21년 幸巳 2월 17일에 졸하니 묘소는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후록 신좌(茂朱郡 赤裳面 三柳里 後麓 申坐)에 합부로 모셔 석의가 갖추어 있다.

철종(哲宗) 12년 辛酉(1861)에 효열(孝烈)로 정려(旌閭)의 특명이 내렸다.

계자 최영(最榮)역시 효행이 출중하여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되고, 그 배위 풍천임씨(豐川任氏)는 치강(致剛)의 따님인데 품성이 온순하여 시어머님을 섬김에 효성을 다하면서 방적(紡績)에 근력하여 밤낮으로 쉼이 없었다. 시어머님께서 본래 고사리 나물을 즐기시니 몸소 캐어 반찬을 해드리되 항상 넉넉치 못함을 한하는데 이듬해 봄에 고사리가 집 뒤에 저절로 나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고 칭찬하였다. 드디어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심에 슬픔을 다하여 3년을 행소(行素)하니 고을에서 천거, 고종(高宗) 22년 乙酉(1885)에 정려(旌閭)의 특전이 내리었다.

※ 丙寅譜,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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