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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문징(柳文徵)
 

류 문 징 柳  文  徵

 

<류문징 : 1777~1849 : 憲宗朝 孝子 大丞公 27世 : 忠景公派>

 

자 사헌(士憲). 호 방화재(防花齋)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5자 금산군수 약(錦山郡守 約)의 11대손이요, 덕신(德信)의 장자로 정조(正祖) 원년 丁酉 7월 29일 무주(茂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더니 부친께서 병환이 위독함에 백방으로 간호하고 치료에 정성을 다하였으나 드디어 운명(殞命)하시기에 이르자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를 부친의 입에 주입(注入)하기 한참 만에 마침 회생(回甦)을 얻어 3년의 수명을 연장하였다.

이어 모친께서 병환으로 거의 돌아가시기에 이르렀는데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려 얼마동안 회생을 얻었다. 전후로 상(喪)을 당하여 슬퍼함은 물론 예제(禮制)를 한결 가례(家禮)에 쫓아 유감없이 행 하였다.

헌종(憲宗) 15년 己酉 11월 1일 졸하니 향년 73세로 무주군 부내면 이안정 갑좌(茂朱郡 府內面 二安亭 甲坐)에 안장되었다.

고을 유림(儒林)에서 천장(薦狀)을 누차 올렸는데 그 천장에 이르기를 『수명을 하늘에 빌어 부친의 명을 10여년 연장하였다. 』하였고, 암행어사(暗行御史)가 포창(褒彰)한 글에 『도내의 유림(儒林)으로 천장(鳶狀)에 연명(聯名)한자가 백 여인이라』하였다.

배위 반남박씨(灌滴朴氏)는 하수(河壽)의 따님이요, 구례장씨(求禮張氏)는 상운(相運)의 따님이요, 밀양박씨(密暘朴氏)는 득형(得亨)의 따님이다.

4남 1녀를 두어 아들은 광석(光錫)이요, 광묵(光黙)은 숙부 문원(文源)의 후로 출계하고, 광승(光昇)이요, 광련(光鍊)이며, 따님은 진양하창조(晋陽河昌朝)에게 출가하였다.

장자 광석(光錫)은 자는 가여(嘉汝)요. 호는계지재 (繼趾齋)인데 부친의 병환에 백약(百藥)을 다 써서 시탕(待湯)에 열중하고 한편 분뇨(糞尿)를 맛보아 차도를 증험하였으나 드디어 운명(殞命)하기에 이르자 손가락을 깨어 그 피를 입에 넣어 드린다. 끝내 대고(大故)를 당하여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울부짖은 나머지 몸이 쇠약하기에 이르렀으나 한결 예제(禮制)를 쫓아 행하고 장례(葬禮)를 마친 후 3년을 여묘(麗墓)하였는데 묘정(墓庭)이 움푹 파이고 묘도(墓道)가 평탄해졌다. 또 그 선조(先祖) 묘소 근처에 권세있는 가문에서 범장(犯葬)을 하였거늘 누차 관청에 소송하였으나 결과가 나지 않음으로 손가락을 깨어 혈서(血書)를 써서 원통함을 알리니 관청으로부터 그 투총(傭塚)을 파내었다. 공께서 돌아가신후 고을 사림(士林)들이 공의 지극한 효행을 감영(監營)에 누차 천거하였다.

3자 광승(光昇)은 자 여화(汝華)인데 부친의 변환에 역시 손가락을 끊어 지성을 다하고 백형(伯兄)으로 더불어 3년을 여묘(廬墓)하였다.

후손이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茂朱郡 茂朱邑 堂山里)에 세거하고 있다.

※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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