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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기선(柳基璇)
 

류 기 선 柳  基  璇

 

<류기선 : 1858~1927 : 高宗朝 行誼 大丞公 30世 : 忠景公派>

 

자 치악(致岳). 호 송산(松山)

노곡 동수(老谷 東秀)의 10대손이요, 경노(慶魯)의 2자인데 숙부 성노(成魯) 후로 출계, 그 계자가 되었다

철종(哲宗) 9년 戊午 7월 20일에 부여 임천(扶餘 林川)에서 태어났는데 본래 천성이 어질고 신의가 있어 사우(士友)들의 추중을 받았다.

庚戌(1910) 합방(合邦)후로 이곳 임천 향교(林川鄕校)의 건물이 오랜 세월에 퇴락되어 거의 쓰러지기에 이르렀는데도 고을에서 보수를 못하고 있었다. 이때 공께서 분연히 나서서 거액(巨額)을 자담(自擔)하여 명륜당(明倫堂)의 구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였다.

丁卯 7월 20일에 향년 70세로 돌아가시었다.

배위 풍양조씨(豐壤趙氏)는 중하(仲夏)의 따님으로 2남 2녀를 두고 돌아가시니 부여군세도면귀덕리후록 망아곡 계좌(扶餘郡世道面歸德里 後麓 望阿谷癸坐)에 부근과 합폄하였다.

아들은 인철(寅喆)과 인협(寅協)이요, 사위는 대구서규석(大邱徐奎錫)과 풍양조동호(豐壤趙東豪)이다.

지난 丙寅(1986)에 임천 유림(儒林)들이 공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자 향교(鄕校)앞에 공적비(功績碑)를 세웠는데 그 비명(碑銘)은 다음과 같다.

『공은 천성이 지극히 어질고 청렴하였도다.

신의를 굳게 지키고 근검을 능히 쫒았도다.

성현을 존모하고 선비를 숭상함이 독실하였도다.

향교 강당이 무너짐에 홀로 보수하였도다.

남을 돕고 어루만져 재물을 아끼지 않았도다.

여러 사람에 뛰어난 행실이요, 아름다운 공적이로다.

이제껏 비를 갖추지 못하여 밤낮으로 민망하였도다.

한낮 책에 기록할 뿐이겠는가, 마땅히 비에 새기도다.』

※ 功績碑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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