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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보성오씨(寶城吳氏)


보성오씨 寶 城 吳 氏

<보성오씨 : 柳寅彰 配位, 1881~1927, 烈婦, 忠景公派 大丞公 31世>

오씨(吳氏)의 관향은 보성(寶城)이요, 계홍(啓弘)의 따님으로 나이 17세에 류문(柳門)으로 출가

하여 옥천군수 수장(沃川郡守 壽長)의 후예로 훈련원판관 희철(訓練院判官 希哲)의 8대손이요, 석구(錫球)의 손이요, 언영(彦永)의 장남 인창(寅彰)의 배위가 되었다.

본래 완순(婉順)한 부덕(婦德)을 갖추어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니 일문(一門)에 화기가 넘치었다.

23세 되던 해에 갑자기 부군이 별세하였는데 시부모가 생존해 계심으로 슬픔을 머금고 집상(執喪)을 예에 쫒아 행하였다.

이듬해에 난도(亂徒)들이 비례(非禮)로서 겁탈하고자 하거늘 부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니 적도들이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후에 또 강폭(强暴)한 변란이 있었는데 부인께서 발과 얼굴등을 일부러 다쳐 온몸에 피를 흘리니 적도들이 혀를 차고 물러났다. 이리하여 마침내 정절(貞節)을 온전히 지키다가 향년47세로 1927년 정월 14일에 별세하시니 제덕곡 말록 자좌(諸德谷 末麓 子坐)에 부군과 합폄하였다.

천성이 청숙(淸淑)하고 용모가 단정하며 효성(孝誠)과 부도(婦道)가 선비가문에 모범이 되었는데 그 불운한 때를 당하여 일생을 고난으로 겪었다.

고을 사림(士林)들이 모두 그 열행(烈行)을 칭송하고 포상(褒賞)을 내렸다.

부군의 중제 인채(仲弟 寅彩)의 장자 봉렬(鳳烈)을 맞아 계자(系子)하였다.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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