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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신평이씨(新平李氏)


신평이씨 新 平 李 氏

<신 평 이 씨 : 柳寅鳳 配位, 1894~1968, 孝婦, 忠景公派 大丞公 31世>

이씨(李氏)의 관향은 신평(新平)인데 필묵(弼黙)의 따님이요. 발영(發英)의 손이요, 학성(學聖)의 증손이요, 진주 류병선(晋州 柳炳先)의 외손으로 고종(高宗), 31년(1894) 12월19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녀로 불리더니 류문(柳門)으로 출가하여 옥천군수 수장(沃川郡守 壽長)의 후예로 훈련원판관 희철(訓鍊院判官 希哲)의 8대손이요, 석천(錫天)의 손이요, 찬영(贊永)의 장자인 인봉(寅鳳)의 배위가 되었다.

우귀(于歸) 후 홀로 계신 시부(媤父)를 지성으로 섬기는 한편 모든 행실이 착하기 그지없었다.

어느날 시부께서 불행히도 미친 소에게 찔려 바위 아래로 떨어져 다리를 다쳐 죽기에 이르렀는데 이씨가 듣고 경황없이 달려가 등에 업고 돌아와 상처를 간호하고 의원을 맞아 꿰메고 백방으로 지성을 다하여 치료하였다. 그 후 또 중풍(中風)으로 4 ․ 5년 병석에 누워 계셨는데 시탕(侍湯)의 절차와 전죽(饘粥)의 공양을 몸소 다하고 혹 남은 찌꺼기가 있으면 자기가 마시어 버리지 않았으며 밤에는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어 마침내 완쾌함을 얻었다.

고을 사람들이 한가지로 효부라 일컫고, 군수 이경식(郡守 李敬植)은 십원금(拾圓金)을 포상하였으며, 1930년 윤6월 경성 유림향약본소(京城 儒林鄕約本所)로 부터 포창완의문(襃彰完議文)이 내리었다.

1968년 정월27일에 별세하시니 둔대동(屯垈洞) 뒷산에 안장하였다.

부군의 아우 인설(寅卨)의 장자 세걸(世杰)을 맞아 계자(系子)를 삼았다.

※襃彰完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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