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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인직(柳寅稷)



류인직 柳 寅 稷

<류인직 : 字 永德, 1913.4.9~1987.4.11. 爲先人. 忠景公派 : 大丞公 30世>

옥천군수 수장(沃川郡守 壽長)의 후예로 참봉 은(參奉 垽)의 12대손이요, 효자 석순(錫淳)의 손이요, 기필(基必)의 장자로 대덕군 탄동면 내동에서 모친 김해김씨 홍식(鴻植)의 따님 사이에 태어났다.

일찌기 어려서부터 천부의 성품이 순효(純孝)하여 능히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할 줄 알았으며 아우들과 지극히 우애하였다.

가세(家勢)가 빈한하여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에 종사하고, 14세에 모친을 여의니 밤낮으로 영구(靈柩) 곁을 떠나지 않고 뛰며 통곡하니 향리의 어른들도 그의 효심에 감루(感淚)하였다.

장성함에 자신의 입에는 단 것을 넣지 않고 근력(勤力)하여 감지지공(甘旨之供)으로 부친을 봉양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하고 친의(親意)에 순종하였다.

일찌기 부친께서 항상 선친의 효행을 천양(闡揚)치 못함을 자탄하시다가 1953년 5월 29일 별세하시니 애훼유례(哀毁蹂禮)하고 3년 거상을 여재지성(如在之誠)을 다하였다.

연로(年老)함에 따라 형제간의 우애는 마치 사마온공(司馬溫公)과 같아서 한번도 질책(叱責)한적이 없고, 동생들이 어려운 처지에 처하면 자신의 처지로 여겨 정성껏 보살펴 주고, 만일 오래 보지 못하면 반드시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정의(情誼)를 나누었다.

문화류씨 대종회에서 1986년 4월, 『문화류씨보감』을 편찬하기 시작하자 조부의 효행에 대한 유림(儒林)의 천장(薦狀)과 비갈문(碑碣文)을 들고 와 수단하고 말하기를 『내 선고께서 조부의 효행을 천양치 못했음을 원통하게 여기신바 이제 그 원한을 풀게 되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더니 얼마후에 별세하였다.

배위는 김녕김씨 광호(光鎬)의 따님이요, 슬하에 2남 2녀를 두니 남은 상걸(相杰)과 성걸(成杰)이요. 딸은 전주 이인호(全州 李仁浩)와 연일 정연봉(延日 鄭淵鳳)에게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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