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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위광(柳 渭 光 )
 

류 위 광 柳  渭  光

 

<류위광 : 1751~1830 : 純祖朝 孝行 : 大丞公 24世 : 檢漢城公派>

 

초휘 위룡(渭龍). 자 운보(雲甫)

함안군수 효용(咸安郡守 孝庸)의 9대손이요, 동위(東煒)의 2자로 영조(英祖) 27년 辛未 2월 10일 김제(金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품이 총명하여 성동(成童)에 이르러 문사(文詞)가 날로 진취하고, 한편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원 정성(定省)의 절차를 폐하지 않고 감지(甘旨)의 공양에 힘을 다하였다.

장가를 든 후에 그 아내에게 일러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께서 늙으시니 집안 살림을 근검히 하여 반찬을 잘 대접하고 뜻을 순종하라, 나는 마땅히 벼슬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리라』하고 서울에 올라가 과장(科場)근처에 이르렀는데 흘연히 두팔뚝이 아파 온 몸에 땀이 흐르는지라 즉시 발길을 돌려 집에 당도하니 모친의 병환이 위중하여 이미 삼일께로, 온 집안에서 공이 속히 돌아오니 모두 놀래었다. 즉시 분뇨(糞尿)를 맛보고 약탕(藥湯)을 시중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하늘에 빌어 마침내 회생(回鼪)하였다. 그후 생리(生梨)를 원하시는데 때에 추운 겨울이라 구하기 어려움으로 나무를 보듬고 울부짖으니 문득 잎사귀 밑에 한 열매가 맺어 있거늘 따가지고 돌아와 봉양하니 사람들이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 하였다.

순조(純禮) 30년 庚寅 5월 13일 졸하니 향년 80세로 부안 변산 중계리 후록 명당룡 신좌(扶安 邊山 中溪里 後麓 明堂龍 辛坐)에 안장하였다.

배위 파평윤씨(坡平尹氏)는 동택(東宅)의 따님으로 3남 1녀를 두어 아들은 경삼(經三) . 경태(經台). 경우(經宇)요, 따님은 통천 김한종(通川 金漢宗)에게 출가하였다.

아들 경삼(經三)은 어려서부터 천품이 특이하여 여러 아이로 더불어 놀면서 모래를 모아 손가락으로 그리되 성인(成人)의 글자와 같더니 장성하여 취학(就學)함에 스승에게 물어 이르기를 『서적(書籍)은 누가 지은 것입니까』하니 스승의 대답이 『성인 (聖人)이 지었단다』하였다. 또 묻기를 『무엇을 일러 성인이라 하는지요』하니 대답이 『도학(道學)과 덕행(德行)이 특히 뛰어난 분을 성인이라 한다』하거늘, 공께서『그러면 성인서(聖人書)를 배우기를 청합니다. 』하고 이로부터 무릎을 꿇고 독서에 열중하며 매양 의심나고 어려운 곳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 그 뜻을 밝혀내고야 말았다. 한편 효성으로 어버이를 봉양하여 지성을 다함으로 향리에서 천장(鳶狀)이 있었다.

경태(經습)는 학업(學業)에 정진하고 효우(孝友)에 독실하여 어버이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함에 일찍 난색 (難色)을 표해본 적이 없었으며 치가(治家)에 근검하니 사림(士林)에서 천장(鳶狀)이 있었다.

후손은 김제군공덕면존걸리(金堤郡孔德面存傑里) , 용지면쌍룡리(龍池面雙龍里)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 丁巳譜, 甲子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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